지난 6월 25일 미국 장로교 총회장에 당선됐던 미국 유니온신학교 교수 이승만(이승만ㆍ69) 목사가 예장 통합 총회의 초청으로 지난 22일 당선 후 처음 한국에 왔다.

“제 신앙의 바탕을 만들어 준 한국 교회에 언제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 개신교를 전한 미국 장로교의 총회장이 된 것은 온갖 시련과 고난을 이겨내고 불과 100년 남짓한 기간 동안에 전세계 개신교의 중심에 선 한국 교회의 위상이 반영된 것입니다. 최근 침체한 모습을 보이는 미국 개신교에 한국 개신교의 생생하고 활기찬 체험을 전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이 목사는 평양의 독실한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할머니는 장로교의 여전도사였으며 아버지는 목사였다. 성화신학교 학생이던 그는 아버지 이태석(이태석) 목사를 공산당에 의해 잃고 1950년 12월 월남했다. 5년간 해병대에서 복무하는 중에도 저녁이면 기차를 타고 서울에 와서 야간 신학교를 다녔다.

“평양에서도 신학생이었지만 정말 목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은 아버님의 순교를 보고서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충분히 전하지 못하고 49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버님께서 저에게 당신이 못다 편 뜻을 이어달라고 말씀하시는 듯 했습니다. ”

1956년 성화신학교 은사인 박대선(박대선) 전 연세대총장의 주선으로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켄터키주 루이빌 장로회신학교와 예일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12년간 모교에서 교수 및 교목으로 근무했고 이어 미국 연합장로교총회 중동·아시아 지역 총무, 장로교총회 세계선교부 부총무 등을 역임했다. 이 목사는 특히 1992~93년 미국 교회협의회(NCC USA) 회장을 맡은 데 이어 올해 소수 민족으로는 최초로 미국의 주요 개신교 교단 중 하나인 장로교 총회장으로 당선돼 화제가 됐다.

미국 장로교는 176개 노회, 1만2000개 교회, 250만 명의 신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총회장은 이를 하나로 묶고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는 자리이다. 이 목사는 “총회장으로서 선교 확대, 영적인 쇄신, 화해와 일치에 중점을 둘 생각”이라며 “특히 미국 교회는 사회적으로는 많은 역할을 했지만 신앙의 기본 바탕을 다지는 데 소홀한 감이 있기 때문에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신앙의 활기가 살아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이승만 목사는 어머니와 형, 누이동생 4명을 남겨놓고 동생(이승규 장로)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온 이산가족이다. 그는 지난 1978년 처음 북한을 방문한 후 미국과 한국 개신교가 북한에 관심을 갖고 지원하도록 힘써 왔다. 따라서 최근의 남·북한 화해 분위기를 바라보는 그의 심정은 남다르다. 아버지를 공산당에 잃고 분노에 사무쳤던 개인적 체험과 그의 이런 활동은 어떻게 연결될까.

“60년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주도한 흑인 인권운동에 참여하면서 억압하는 사람이 아니라 억압받은 사람이 새 역사를 만들며, 증오를 넘어선 용서가 사회를 바꾸어 나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버님의 순교 같은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저 같은 피해자가 화해와 통일에 더욱 이바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서울 소망교회에서 열리고 있는 예장 통합 총회를 참관하고 강연, 세미나, 면담 등으로 바쁜 일정을 보낸 그는 29일 미국으로 돌아간다.

/이선민기자 sm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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