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김광일기자

알바니아가 낳은 유럽 최고의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64)는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을 철저히 배격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데올로기로 황폐해진 조국 때문일 것이다. 그는 “문학의 캘린더와 삶의 캘린더는 다르다”고 단언한다. 매년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인 그는 ‘저속한 취미’ ‘시장의 법칙’ ‘문학의 질을 떨어뜨리는 부정적 요소’ 등으로부터 문학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파리 중심부 소르본 대학 정문을 나와 뤽상부르 공원쪽으로 발걸음을 3분쯤 옮기면 왼편으로 카다레가 사는 집이 나온다. 그를 만난 것은 지난달 31일이다.

―당신은 소설가요 시인이요 언론인이었습니다.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소설만 20여 권입니다. 당신을 낳아준 알바니아와 당신의 작품은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 것입니까.

“내 자신은 알바니아인의 고통스러운 역사와 그들의 보편적 정서를 내가 가진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서 작품으로 엮어내고 있습니다. 내 자신을 지칭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만, 문학은 위대한 작가에 의해 보호받지요. 위대한 작가 한 사람은 범속한 사람 100만명보다 더 큰일을 하기도 합니다. ”

뉴욕타임스는 “그의 작품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알바니아를 발견하게 됐다”고 평가한 적이 있다. 유럽 비평가들은 그를 “우리시대 최고의 작가 중 한 사람” 혹은 “20세기의 고전으로 남을 작가”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언론은 그를 가리켜 흔히 ‘정치 작가’라고 부른다. 알바니아 공산 치하를 온몸으로 저항해오던 그는 본격적인 자유화가 시작되기 직전인 90년대 초 프랑스로 망명했고, 이후 기회 가 닿을 때마다 “조국을 망친” 정치인들을 비판하고 있다. 낡은 소파와 장식 거울이 거의 전부인 검소한 거실에서 그는 아직도 저항의 열정이 남아 있는 청년의 목소리로 답변을 일관했다.

―당신에게 정치인 비판은 왜 그토록 무조건적이고 본질적인 것입니까.

“비판은 우선 나부터, 내 나라부터 해야겠지요. 모든 정치인을 욕하는 것은 아니에요. 알바니아의 공산정권 그리고 그 뒤를 이은 현 정권의 정치인들에게 예리한 날을 세우는 것이지요. 그들은 한마디로 무책임한 것이 특징입니다. 민주주의 법칙을 모릅니다. 너무 쉽게 흥분하고 색깔도 너무 강해요.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죠. 앞을 볼 줄 모르고,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족속입니다. ”

―심할 경우는 정치인을 원숭이에 비유하기도 했던데요.

“그들이 서로를 닮으려 하는 속성 때문이지요. 그들은 전(전) 정권의 실정을 그렇게 욕해 놓고도 자신들이 정권을 잡으면 그 실수를 그대로 반복합니다. ”

―당신은 공산정권 시절의 알바니아 출신으로서 최근 남·북한 화해의 과정을 어떻게 보십니까.

“서로를 서로에게 주장하기만 하면 화해가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의 프로파간다 문화와 진짜 문화를 잘 구별해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관용이지요. ”

―당신은 ‘문학의 상업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팔리는 것에 급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요. 그렇다면 소설가들은 무얼 먹고 삽니까.

“작가가 아동물을 쓸 수도 있지요. 누군가 해야할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것을 바탕으로 문학의 근본적인 원칙들을 바꾸려고 덤벼서는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열악한’ 문학과 ‘위대한’ 문학을 엄격하게 구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열악한 문학을 모든 이에게 전파하려는 것은 공산 정권의 수법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

계속된 얘기에서 그는 “신기술의 발전이 문학에 영향을 줄 수는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표명했다. 그는 벌떡 일어서더니 주방으로 가서 물통 2개를 꺼내온다. 차가운 물과 보통 물을 가져와서 섞어서 마시라고 권했다. 잠시 후 외출 중이던 부인이 돌아왔다.

그는 “한국 작가 중에는 작년에 프랑스에 들렀던 이청준씨와 교분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5일부터 열리는 서울 국제문학포럼(대산문화재단주최)에 참가한다. /kikim@chosun.com



▲1936년 알바니아 출생

▲10세 때 셰익스피어 ‘맥베드’를 전부 필사함

▲1950년대 티라나 대학, 모스크바 고리키 연구소 등에서 공부

▲1970년 ‘죽은 군대의 장군’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음

▲알바니아 인민의회 의원 활동

▲1990년 프랑스로 망명, 레지옹도뇌르 훈장 받음

▲‘부서진 사월’ ‘죽은 군대의 장군’ ‘돌에 새긴 연대기’ 등이 한국어로 번역됐음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