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어느 날 남북 통일이 이루어지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통일은 분명 민족 최대의 경사겠지만, 반세기 이상 극단적으로 다른 체제 속에서 살아온 남북한 사람들이 하나로 뒤섞이는 일에는 환희와 기대 외에 엄청난 혼란과 고통도 따를 것이 분명하다. 서독도 나름대로는 동독에 대한 연구와 통일 대비를 충실히 했다고 자부했지만 막상 통일 후 야기되는 문제는 한두가지가 아니었고, 10년이 지나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우선 통일이 되면 북한 주민들이 대거 남으로 내려와 서울 등 남한의 대도시들부터 포화상태가 될 것이다. 민간 통일연구기관들은 그 인원을 최소 108만명에서 최대 396만명으로 예측하고 있다. 자연히 생존의 터전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남쪽 사람들과 이를 나눠 가지려는 사람들 사이에 치열한 싸움이 벌어질 게 분명하다.

사람이 갑자기 불어나고 유동인구가 많아지는 만큼 치안부재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통일 이후 북한지역을 ‘특별구역’으로 선포해 주민 이동을 제한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다고 해도 북쪽을 탈출하는 제2의 ‘탈북 러시’를 어떻게 막을 것인지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북쪽에선 통일된 다음날부터 전역에서 토지와 관련된 갈등과 분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아직도 남한에는 통일 이후에 대비해 북한 지역의 땅 문서를 보관하고 있는 실향민들이 적지 않다.

독일의 경우 토지는 공산화 전 소유자에게 반환-보상했으나,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게 정부 당국자들과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지가(지가) 결정도 어려운 데다 이미 옛 행정구역이 달라졌고 지번(지번)도 없어진 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일단 국유화 조치를 거쳐 현 거주민(북한 주민)에게 판매하는 방식으로 처리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하지만 실향민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남한의 복부인과 투기꾼들은 ‘사유화’조치 이전에 ‘돈’되는 곳에 한 평이라도 더 잡아두기 위해 북한 지역을 샅샅이 누비고 다닐지도 모른다.

통일과 함께 고향을 찾은 실향민은 북쪽의 아내(남편)와 자식을 다시 만나는 기쁨도 잠시뿐. 남쪽의 아내(남편)와 북쪽의 아내(남편) 2명 중 누구를 법적 배우자로 인정할 것인지, 생면부지의 이복(이복)-이부(이부) 형제간의 상속 문제 등으로 골치를 앓을 것이다. 통일한국의 가정법원은 배우자 판정-이혼-상속 송사(송사)로 날이 지새는 진풍경이 일어날 수도 있다.

남북한 어느 쪽의 민법(또는 가정법)으로 재판할 것인가도 문제이다. 남북의 법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형법은 자연법 질서를 근간으로 하고 있어 우리 법을 일방적으로 적용할 수 있으나 민법 등은 전통적인 관행이나 풍습 등과 연관돼 있어 북한 법을 무조건 폐기할 수는 없다. 헌법재판소도 어느쪽 법의 손을 들어줄지를 놓고 연일 씨름할 수도 있다.

남북한 학생들도 서로 다른 학제, 교과서, 교과목 편성, 대입시험 등으로 엄청난 혼란을 겪을 것이다. 남한의 초등학교는 6년제이지만 북한 인민학교는 4년제이다. 막 인민학교를 졸업한 학생을 중학교에 보낼 것인지, 아니면 인민학교를 6년제로 바꿀 것인지. 또는 이미 한 해 전에 인민학교를 졸업해 현재 6년제 고등중학교(우리의 중-고등학교) 1~2학년에 있는 학생들을 초등학교 5~6학년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중학교 1~2학년으로 볼 것인지 등을 결정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역사교육으로, ‘6·25 전쟁’이 대표적인 예이다. 남한에서도 전쟁 원인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을 정도인데, 태어날 때부터 ‘미제와 남조선이 일으킨 북침전쟁’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머리 속에 ‘남침’이라는 진실을 입력하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김일성 위주로 그려진 ‘조선력사’에서 김일성을 지워내는 일 등 2300만을 상대로 한 ‘역사 바로세우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남북한 의학용어가 다른 데다 북한의 의료 장비가 낙후해, 환자들이 남쪽으로 몰려 남한 의사들은 손이 모자랄 정도로 바쁠 것이다. 남한 의학에선 영어와 라틴어 등을 쓰나 북한에선 러시아어를 주로 사용한다. 북한의 의사-약사들은 손님이 없어 사실상 실직상태에 놓일 것이다. 이처럼 고학력일수록 실업률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연금 등 사회보장은 제도만 놓고 보면 북한이 거의 완벽하다. 그 체제에 살던 북한 사람들은 통일이 됐으니 60-70년대처럼 국가에서 완전한 사회보장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남쪽의 제도는 그렇지 못하다. 대신 남한 사람들은 ‘왜 내가 북한 사람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세금을 더 내야 하는가’며 불만을 터뜨릴 것이다.

화폐 문제도 심각하다. 현재 미국달러를 기준으로 하면 북한돈 1원이 남한돈 550원 정도. 그러나 구매력이 없는 북한돈은 사실상 휴지조각이나 다름없다. 때문에 당장은 북쪽에선 북한돈을, 남쪽에선 한국돈을 쓰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북한 인민군은 북한체제의 버팀목이었다는 점에서 인민군 해체도 민감한 문제이다. 100만이 넘는 대규모 병력 중 1개 사단만이라도 통일에 반대해 항거한다면 자칫 내전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의 ‘한반도 급변대책’ 1순위가 인민군 처리 방안인 것도 이 때문이다.

/김인구기자 gink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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