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 이후 우리 사회가 현기증이 날 정도로 급변하고 있으나 남·북한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사안인 군사적 신뢰구축 문제는 북한이 고의적으로 회피하거나 소극적으로 다루는 바람에 제대로 시동도 걸리지 않고 있었다.

군사적 신뢰구축은 남·북한 간에 군사 직통전화를 설치해 위기를 방지하자든가 혹은 비무장지대를 평화적으로 적극 이용하자는 제의같은 것으로, 남·북한 간 진정한 평화정착에 있어서 가장 필수적이고 핵심적인 사업의 하나다.

그러다가 지난 1일 제2차 남북 장관급회담 합의문에서 “남·북한은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를 보장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이와 관련하여 쌍방 군사당국자들이 회담을 조속한 시일 내에 가지도록 협의한다”라는 원론적인 이야기 한마디를 명기하는 정도로 어렵게 다뤄졌다.

북한이 이처럼 남·북한 간 군사적 신뢰구축 문제를 소극적으로 다루고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볼 수 있다. 우선 그동안 북한에 ‘남·북한 간 군사적인 긴장’이라는 요소는 북한의 정권유지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였으며 지금도 변함이 없다는 점이다. 그것은 북한에는 단순한 남·북한 간 군사적인 대결의 의미만이 아니고, 북한 체제를 유지해온 근본적인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중요한 북한 체제유지의 힘을 남·북한 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고 다루기가 북한의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을 것이다.

둘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얘기했듯이 그의 통치력의 근본은 군력(군력)이며, 남·북한 간 군사적 신뢰구축이 형성된다는 것은 북한에서 군력의 중요성이 어느 정도 감소됨을 의미한다. 군력의 중요성이 감소되므로 인해서 북한의 군부가 가질 수도 있는 불만은 김정일 위원장에게는 크나큰 위험 변수가 될 수도 있다.

셋째, 북한의 군사력은 단순한 전투력으로서의 의미만이 아니고 중요한 생존의 수단이며, 정권유지의 카드요, 외교협상의 카드다. 따라서 군사적 긴장해소를 가져오는 군사적인 신뢰구축을 이룩해 이러한 다목적용 군사력이라는 카드의 힘을 손상시키고 싶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현재 남한은 향후 남·북한 관계를 교류·협력 증진→군사적 신뢰구축→평화체제 구축→평화통일 순으로 구상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북한은 남북 제한적 교류·협력→경제적 실리 획득→강성대국 건설→연방제 통일순으로 구상하고 있기 때문에 남·북한 군사적 신뢰구축 문제를 가급적 회피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향후 북한은 남한의 요구에 의해 군사적 신뢰구축 문제를 다루기는 하되 다른 분야에 비해 가장 느리게, 그리고 가장 무성의하게 다룰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군사당국자 회담에서 군사적 신뢰구축과 관련한 주제들을 다루면서 가장 까다롭게, 혹은 남한이 수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른바 ‘가장 통크게’ 다루면서 정치적인 선전과 함께 그 어려움의 책임을 남한에 전가할 가능성도 있다.

또한 북한은 북한의 군사력이 조금이라도 약화되는 차원에서는 여하한 군사적인 신뢰구축 문제에도 절대로 임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남·북한 군사적 신뢰구축 문제를 다룸에 있어 지성의 노력은 하되 북한의 진정한 한반도 평화 및 군사적 신뢰구축에 대한 의지를 정확하게 확인하면서 냉정하게 다뤄야만 한다. 그리고 군사적인 신뢰구축을 한다는 명분아래 우리의 군사력이 결정적인 손상을 입게 되는 노력은 조금이라도 하여서는 안 된다.

군사적인 신뢰구축은 쌍방이 다 함께 진정으로 평화를 추구하는 강한 신념과 믿음을 간직하고, 그러한 믿음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강한 실천력을 동반하여야만 이룩될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송 대 성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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