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4강전은 한국에서 봅시다.”

베이징(北京) 주재 한국 공관에 진입해 한국 망명을 기다려왔던 탈북자들은 23일 부푼 꿈을 안고 태국 방콕으로 향하는 길에 올랐다. 특히 전날 총영사관 내에서 한국과 스페인전을 시청하면서 한국이 승리해 4강전에 진출하자 서로 얼싸안고 기뻐했던 이들은, 하루 만인 이날 오전 한국행이 결정됐다는 소식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오후 2시40분(한국시각 3시40분)쯤 총영사관 직원 출입구 앞에는 대사관의 번호판을 단 소형 승합차와 승용차 3~4대가 도착했다. 곧이어 비가 내리는 가운데 탈북자들이 영사관에서 나와 차례로 승합차와 승용차에 분승, 영사관 서쪽의 차량 출입구를 통해 소리없이 빠져나갔다.

이로써 지난달 23일 탈북자 최모(40)씨가 총영사관에 진입하면서 한달 동안 계속됐던 탈북자들의 한국 공관 연쇄진입 사건은 일단락을 맺게 됐다.

탈북자들은 출발에 앞서 이날 낮 상기된 얼굴로 영사관 내부를 돌아다니며 개인 물품을 챙기는 등 제3국행 준비에 분주했다. 영사관측은 이날 낮 인근 한국식당에서 백반 등 한식을 주문, 탈북자들에게 마지막 식사를 제공했다.

영사관측은 또 아침부터 지난번 탈북자 9명이 진입하면서 파손된 건물 입구 대형 유리문을 갈아끼우는 등 ‘탈북자 국면’을 정리하는 데 분주한 모습이었다.

중국측과 탈북자 문제를 협상하느라 입술이 갈라지는 등 초췌한 모습의 이준규(李俊揆) 총영사는 “탈북자들이 떠나고 난 뒤 사무실 맞은편 문이 휑하니 열려있는 탈북자 숙소를 바라보니 그렇게 허전할 수가 없었다”며 “그간 탈북자들과 정이 들었던 모양”이라고 말했다.

그는 협상결과가 미흡하다는 비판에 대해 “다른 것은 몰라도 한국 공관에 들어오는 탈북자도 한국으로 갈 수 있다는 중요한 선례를 세운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베이징= 여시동 특파원 sdye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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