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 반의 대북정책 추진과정에서 나타난 주요한 변화는 남북정상회담과 제1차 장관급회담, 남북의 인적 물적 교류확대, 그리고 이산가족 제1차 교환방문이었다.

이러한 새 변화가 한반도 21세기의 장래에 어떠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인가를 미래지향의 역사적 안목에서 평가할 잣대는 지난 2년 반의 대북정책이 21세기 생존의 필수조건을 충족시키는 데 얼마나 기여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21세기 문명의 기준에서 보자면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의 추진방향에 따라 크게 좌우될 것이다. 왜냐하면 6·15공동선언의 기본정신인 자주와 통일은 19세기의 생존조건이며 21세기의 생존조건으로는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19세기에 통일·자주하지 못했던 한반도가 20세기에 식민지가 되었지만, 21세기에는 더 이상 19세기식 통일·자주 국가의 건설만으로 생존을 약속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의 전반기 대북정책이 정상회담을 마련하기 위해 북한의 19세기적 국가목표를 최대한 포용한 것이라면, 후반기 대북정책은 정상회담을 분수령으로 해서 북이 남의 21세기적 국가목표를 최대한 수용하도록 추진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북 당국자들이 쌍방 합의에 골몰하고 흥분하는 속에 한반도의 7000만 민족은 21세기의 미아가 되는 위험에 직면할 것이다.

21세기에 살아남기 위한 대북정책은 우선적으로 평화화(평화화)에 주력해야 한다. 한반도에서 보여지고 있는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은 시간이 갈수록 ‘21세기 야만’의 상징으로 부각될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 없이 21세기의 생존은 불가능하다.

21세기 대북정책은 다음으로 번영화에 주력해야 한다. 북한 빈곤층의 삶이 하루 빨리 향상되지 않는다면 한반도는 ‘21세기 야만’의 위험성에서 쉽사리 벗어나기 어렵다. 북한의 번영화는 현재와 같은 일방적 대북 지원으로는 현실적으로 한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번영화를 위한 계획에서 실천의 전 과정을 국제공조 속에서 남북 공동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19세기가 통일과 자주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복합화의 세기이다. 후반기 대북정책은 남과 북이 자주와 통일의 19세기를 넘어서서 남과 북, 한반도, 동아시아, 그리고 세계가 함께 하는 복합과 공생의 21세기로 나아갈 수 있도록 추진해야 한다.

후반기 대북정책이 21세기 목표의 실천에 기여하지 못한다면 남북정상회담은 21세기 한반도 역사의 수레바퀴를 전진시키기보다 후퇴시킬 위험성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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