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하원 공화당 정책위원회의 대북 보고서가 국내에 보도되면서 미·북관계를 걱정하는 소리가 높다.

온 나라를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남북 이산가족 상봉으로 통일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드높아진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미 의회의 송곳 같은 지적은 남한과 북한, 미국의 삼각관계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었다.

필자도 지난달 28일 워싱턴에서 우연히 보고서를 전달받았을 때, ‘클린턴·고어 행정부가 북한 김정일의 백만 대군을 지원한다’는 큰 제목과 함께 ‘북한은 1년에 65개의 핵폭탄을 생산할 수 있는 플루토늄을 가질 수 있다’는 원색적인 소제목을 보고 적잖게 놀랐다.

보고서가 발표된 7월 27일쯤은 부시 후보가 딕 체니를 부통령 후보로 낙점하고 공화당 전당대회를 앞둔 시점이었다. 언뜻 부시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선거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보고서를 건네 준 외교전문가는 ‘워싱턴 정가는 아직 북한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코멘트를 덧붙였다.

보고서는 주로 북한의 호전성과 클린턴 행정부의 무모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 의회는 대북자문위원회를 통해 지난해 말에도 ‘미국이 구소련에 이어 북한의 최대 원조국이 되었으며 미국이 북한 국민의 3분의 1 이상을 먹여살리고 있다’며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비난해왔다. 그런데 문제는 남북 정상회담 개최 이전에 발표된 정책보고서보다 오히려 강도 높게 대북정책을 비난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예컨대 1948년 북한이 건국한 이래로 부시 행정부까지 북한에 단 1전도 주지 않았지만, 클린턴·고어 행정부하에서 지난 5년 동안 6억4500만달러를 지원했다는 점, 제네바 협약 체결 이후 북한의 미사일 생산능력도 수직 상승했다는 점 등을 들어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대한 적대감과 대북 경수로 지원에 대한 어리석음을 질타했다.

현 시점에서 미 의회 의원들의 강경한 대북관이 우리에게 전달해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김정일 위원장은 근자에 ‘내 맘만 먹으면 북·미수교도 문제없다’고 자신있게 말하면서도 ‘미국이 테러국가라는 고깔만 벗겨주면’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남·북한 정상이 약속한 대로 북한의 사회간접자본 시설 등 본격적인 경협과 대북지원이 무리 없이 진행되려면 국제사회가 참여하는 대북 프로젝트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테러리스트 집단이라는 딱지가 붙은 북한에 과연 어떤 국가나 기관, 은행이 막대한 자금을 융자해 줄 것인가.

즉 북한 경제회생과 북·미관계 개선의 열쇠는 최근에 성과 없이 끝난 북·미 테러회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설사 클린턴 행정부가 대선을 앞두고 고어를 지원하기 위해 북한의 테러 지원국 해제를 추진한다 해도 공화당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의회의 동의를 반드시 얻어야 한다.

그렇다면 미 의회의 대북 강경방침은 단지 ‘미 의회 의원들의 생각’이 아니라 북한 테러리스트 지원국 해제와 직결되어 있으며, 국제사회에서 북한으로 흘러들어갈 자금줄과 연결되어 있다.

북한이 일단 테러 지원국에서 해제되면 IBRD, ADB, IMF 등과 같은 국제금융의 길이 열리게 된다. 이는 다시 ‘북한경제’와 남·북한 경협과 통일논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지난 50년간의 남·북한과 미국의 삼각관계는 이렇게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서로 얽히고설켜 있다. 우리가 미 의회의 대북 정책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이제 김정일 위원장이 호방하게 다짐한 대로, 북한이 테러리스트 지원국 탈피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실천을 보여주어야 할 때다.

/ 김정원 세종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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