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농업사 연구의 제1인자로 꼽히는 김용섭(김용섭ㆍ69) 전 연세대교수가 정년 퇴임 후 첫번째 저서인 ‘한국중세농업사연구’(지식산업사)를 펴냈다. 지난 95년부터 발간되기 시작한 ‘김용섭저작집’의 제8권으로 나온 이번 저서는 그가 학교를 떠나면서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마련한 개인연구실(송암서재ㆍ송암서재)에서 보낸 3년여 세월의 결실이다.

김용섭 교수는 조선후기 농업사에 대한 치밀하고 방대한 연구를 통해 해방 후 우리 역사학계의 가장 큰 과제였던 식민사관(식민사관) 극복에 큰 역할을 담당했던 인물. 그는 ‘1년 365일을 연구실에서 보내는 학자’로 학계에서는 확고한 위치에 있지만 언론 접촉을 피해 왔기 때문에 일반인에게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한국중세농업사연구’에는 우리나라 전통사회의 근간이었던 토지제도의 변화 과정을 총정리한 ‘토지제도의 사적(사적) 추이(추이)’, 토지제도의 구체적인 운영 원리를 밝힌 ‘고려시기의 양전제(양전제)’ ‘고려전기의 전품제(전품제)’ ‘결부제(결부제)의 전개 과정’, 우리 역사상 최대 변동기의 하나인 고려말ㆍ조선초의 농업개발 정책을 조명한 ‘조선초기의 권농정책’ ‘세종조의 농업기술’ 등 7편의 논문이 실려 있다. 이번 저서는 조선후기 사회의 변동을 해명하는 데서 출발해 개항기와 일제시대를 다루었던 ‘김용섭 사학(사학)’의 연구 범위가 드디어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중세의 사회 구조를 밝히는 데까지 미쳤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결부제의 전개 과정’이다. 웬만한 책 한 권 분량인 이 방대한 논문은 1500년 동안 우리나라 토지ㆍ조세제도의 운영 원리였던 결부제의 발생, 발전, 소멸 과정을 세밀하게 추적한 글이다. 김 교수의 논문은 이제까지 이 분야의 최고 업적으로 꼽히는 북한학자 박시형(박시형)의 논문을 넘어서는 역작으로 평가된다.

김용섭 교수는 뒤이어 ‘한국근대농업사연구[Ⅲ]’ ‘증보판 한국근현대농업사연구’ 등 자신의 그 동안 연구 성과들을 마무리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김 교수는 “논문집을 손보는 일이 끝나면 이를 토대로 한국 농업사 전체의 흐름을 담은 개설서를 하나 쓰고 싶다”고 말했다. /이선민기자 sm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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