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식(장충식)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거론한 ‘추석 전후 2차 상봉’에 대해 정부 당국자들은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분위기다. 정부의 기본 입장과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한 고위 당국자는 21일 “장 총재의 신념에서 나온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현실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같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산가족 문제해결의 앞 순위에 ‘면회소 설치’를 올려놓고 있다. 면회소가 이산가족 생사확인과 서신교환, 상봉 등을 제도화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기 때문이다. 남·북한은 지난 6월말 적십자회담에서 ▲8·15 교환방문 ▲비전향장기수 송환 ▲면회소 설치 등에 합의했다. 합의는 면회소 설치 협의가 장기수 송환에 순서에서 밀렸지만, 당시 정부는 면회소가 먼저 되거나 최소한 장기수 송환과 병행 추진돼야 한다는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진력을 다했었다.

때문에 장기수 송환이 이뤄지면 반드시 면회소가 설치돼야 하며, 면회소가 설치되면 더이상 비용이 많이 드는 ‘이벤트성 상봉(교환방문)’은 불필요하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그런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9·10월 상봉’을 언급하자 정부는 일단 29일부터 시작되는 2차 장관급회담에서 북측의 진의(진의)를 알아보겠다고 했다. 김 위원장의 발언이 면회소 상봉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또다시 교환방문을 하자는 것인지 들어보겠다는 것이다.

정부 일각에선 북측이 이미 합의한 면회소 설치를 뒤로 미루고 이벤트성 상봉을 한 차례 더 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8·15 교환방문’ 때 서울에 온 북측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김 위원장의 발언이 ‘추가 교환방문’을 의미한다는 의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 당국자는 “면회소 설치는 6월에 이미 합의한 사안이고, ‘추가 상봉’은 새로운 합의가 있어야 한다”면서 “북한이 만약 2차 장관급회담에서 이같은 입장을 개진할 경우, 면회소 설치 후 논의하자는 게 정부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적 총재가 불쑥 ‘추석 전후 2차 상봉’을 꺼냈으니, 현실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일부에선 장 총재의 발언이 회담에서 ‘면회소 우선 설치’라는 우리측 입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벌써부터 우려하고 있다. 별도 상봉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북측 의도에 말려들 수 있다는 것이다.

북측이 이산가족 문제에 대한 ‘면역성’을 높이기 위해 교환방문을 한두 차례 더하는 것은 무방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으나, 정부는 면회소의 조기 설치만이 이산가족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하는 첩경(첩경)이라고 믿고 있다.

/김인구기자 gink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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