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면서 계속

▲김재철=한-중-일 자유무역협정이 떠오르고 있지만, 중국은 아직 자신들의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부정적이며, 한국은 중국이 빠진 상태에서 한-일간에만 자유무역협정을 맺는 데 소극적입니다. 따라서 성사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적인 지역주의 추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한-중-일 3국이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분야부터 한-중-일이 점차 교류를 확대하면 좋은 때가 오리라고 생각합니다. 중국 일본과는 경제적인 협력을 강화하고, 미국과는 정치 군사적인 동맹이 필요합니다.

▲김경원=중국 경제가 한국에 갖는 비중이 미국을 앞지르고, 우리와 중국간의 협력관계가 더욱 긴밀해지게 될 때 정치-경제적 역학변화를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또다시 중국시대로 되돌아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입니다.

▲이상우=그 시대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미국과 동맹을 유지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중국과 일본을 견제하면서 자주권을 수호하기 위해 역외 강대국과 협조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다만 한-미동맹은 미-일간의 안보협력과 비슷한 형태로 개선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안보를 확고하게 다질 수 있을 만큼 계산된 한-미 관계를 유지하면서 중국 일본과도 가까이 지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김경원=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유지하자고 하지만 아시아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는 소리가 지식층에서 나오고 있고, 국민들 마음속에도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에 의존해서 살아왔다는 의식 때문에 일부러 고개를 중국쪽으로 돌리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세계화가 문화적 정체성을 포기하고 미국화하는 것이라는 인식에서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우리의 생존전략은 세계화를 어떻게 다룰 것이냐 하는 문제와 직결돼 있습니다.

▲이상우=그것은 주체적 자각의 문제입니다. 국민들을 응집시킬 수 있는 문화역량이 있을 때는 우리의 세상을 열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우리라는 존재 자체가 없어지게 됩니다. 몽골이 중국을 지배했지만 결국은 중국문화에 동화돼 버렸습니다. ‘과학이 발견하고, 산업이 적용하고, 인간이 적응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발견단계에는 지식이 필요하지만, 적용과 적응의 단계는 문화의 문제입니다. 문화역량이 있는 나라는 모든 과학적 성과를 자기발전에 이용할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는 세계사의 물살에 휩쓸려 버리고 맙니다.

▲김재철=광복 이후 우리는 정치 군사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서양적인 것, 특히 미국을 모방했습니다. 한국의 동양적 바탕이나 민족적 뿌리를 생각지 않고 무분별하게 외국 문물을 들여오면 안됩니다. 이제는 주체적인 시각에서 대응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 것만으로도 안되고, 남의 것만으로도 안되는 세상에서 이를 조화시킬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상우=화제를 바꿔 새로운 세기에서 일본의 구실을 생각해 봅시다. 일본도 지금 자신들의 미래에 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21세기 일본은 지난 세월처럼 미국의 그늘에만 있을 수도 없고, 중국 밑으로 들어갈 생각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자신들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질서를 만들 수도 없는 형편입니다. 한때는 일본이 주도하는 새로운 대동아공영권 형성이라는 포부를 갖고 있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런 분위기도 줄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한-일 협력관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일본과의 협조 영역이 넓어지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김경원=일본의 안보정책은 미국의 주도적 역할을 전제로 하고 있고, 앞으로도 이를 견지할 것입니다. 경제는 오랜 침체에서 탈피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가운데 일본 사회구조 개혁론이 나오고 있습니다.

따라서 일본의 군사적 위협이나 패권행사 같은 문제는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이런 점에서 한-일관계는 낙관적입니다. 중국은 정치체제의 근대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일본은 민주주의를 하는 근대화된 국가라는 점에서 한국의 대일 관계는 대중국 관계와 질적으로 다를 것입니다.

▲이상우=북한은 95년부터 시작된 자칭 ‘고난의 행군’이 99년을 계기로 한 고비를 넘어서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중-일은 한반도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일단 ‘북한살리기’에 합의를 본 것 같습니다. 우리가 통일을 추구하지만 않는다면 이들 주변국가와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10~20년쯤 한반도는 두 개의 국가가 공존하는 체제가 유지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경우 형식적인 통일보다는 실질적 통일에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말하자면 동북아 질서에서 남북 공존체제를 안정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경원=우리의 통일에 대한 기대감은 10년 전 독일 통일을 보며 상승했습니다. 하지만 독일은 역설적으로 브란트가 집권하면서 ‘통일우선정책’을 포기하고 ‘현실인정정책’을 추진한 뒤 20년이 지나 동독이 무너짐으로써 통일이 가능했습니다. 현 정부의 햇볕정책이 바로 현실인정정책인데 북한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 남북한 관계에 질적 변화가 일어나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그동안 장기적 안목과 현실 위에서 우리의 힘을 기르는 일이 중요합니다. 안보면에서 우리 자신의 책임이 점점 더 커진다는 것을 자각해야 하고, 경제적인 면에서는 엄청난 통일비용이 들어가므로 많은 것을 준비해야 합니다.

▲김재철=남북간의 경제관계는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보다는 자연스럽게 진전되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경제협력 관계의 진전을 통해 정치적 협력의 길이 열리기를 기대하는 전략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한-중-일 경제협력체가 구성된다면 북한은 양질의 노동력 제공과 지리적 교량역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북한에서 얻을 것보다는 우리가 줄 것이 많겠지만 어느 시기까지는 북한을 이끌고 가야 합니다.

▲이상우=북한과의 경제교류는 남북관계가 정치적으로 진전하지 않아도 발전할 것입니다. 북한은 우리의 일부이고, 앞으로 어차피 우리가 북한을 살려나가야 합니다.

따라서 북한 경제규모가 의미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한-중-일간 경제 협력체제가 이루어질 경우 북한의 참여에 앞장서는 게 좋습니다.

▲김철수=20세기는 우리가 선진국 대열로 도약한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비록 세기말에 외환 위기를 겪었지만 지금은 다시 자신감을 찾고 있습니다. 세계가 개방되면서 기회는 많아지고 있고, 어떻게 그 기회를 포착하느냐에 국력을 쏟아야 합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한때 세계 경제의 기관차 노릇을 했던 아시아 주변 경제와의 협력이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김경원=한반도는 과거 오랫동안 대륙세력의 지배권에서 지내왔고, 지난 반세기 동안은 해양세력의 영향 아래 있었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가능성, 즉 양 세력간의 균형을 찾고 그 균형 속에서 자주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다가왔습니다.

글로벌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다행이며, 우리가 세워야 할 분명한 전략은 세계화의 틀 속에서 지역협력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새로운 지식을 개발하고 활용하는 젊은 지식역군들에게 좋은 기회가 펼쳐져 있습니다. 대기업이 아니라 지식산업의 첨단을 가는 젊은이들이 우리의 희망이자 전략입니다.

▲김재철=우리 민족은 20세기 전반의 굴욕을 지나 후반에 국제무대에 등장했는데, 새로운 세기에는 참으로 좋은 시대가 오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합니다. 문명의 서천설(서천설)을 꼭 들지 않더라도 동북아시대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동북아는 물류나 관광 등 지경(지경)학적으로 대단히 유리한 조건과 국제 비즈니스의 중심이 될 만한 여건을 갖고 있습니다. 이제 상품을 수출하는 무역도 중요하지만 지식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와 관광, 국제회의를 중시하는 신무역전략이 필요합니다.

▲이상우=우리 내부의 여러 요소, 즉 정부를 비롯한 학계, 언론계, 문화계 등등 다양한 요소를 잘 묶어서 관리하는 능력이 중요한 변수입니다.

이런 관리능력이란 결국 정치를 말하는데, 현재와 같은 정치체제로는 이런 요소를 융합하고 녹여내서 민족발전으로 끌고 갈 수 없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가 ‘죽고 사는’ 문제는 국력관리능력, 즉 정치에 달려 있습니다.

/정리=주용중기자 midway@chosun.com

/권대열기자 dykw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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