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서 나흘을 보낸 남측의 이산가족들은 18일 아침 고려호텔 1층 로비에서 서로 부둥켜 안은 채 오열했으며 “이제 가면 언제 만나나”, “몸 건강히 잘 있으라”며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인사를 주고 받았다.

○…“마누라, 아흔살까지만 살아주소. 그래서 손자들 결혼식도 같이 봅시다. ”

분단의 부부 이선행(81)씨와 북쪽 부인 홍경옥(76)씨는 고려호텔 로비 찻집에서 나란히 앉아 서로 손을 꼭 잡고 헤어짐의 아픔을 이렇게 위로했다. 홍씨는 이씨의 남쪽 부인 이송자(82)씨를 가리키며 “50년 전처럼 또 헤어지지만 그래도 든든한 식모가 곁에 있어 안심이다”며 “남쪽 부인에게 꼭 고맙다는 말을 전해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떠나야 하는 시간이 가까워오자 이씨의 막내아들 진성(52)씨가 멀리 떨어져 앉아 있던 이송자씨를 아버지, 어머니 곁으로 모셨다.

이송자씨는 남편의 북쪽 부인 홍씨의 손을 잡고 “아무쪼록 건강하게 살아서 다음에 합칠 기회가 있으면 내가 양보할 테니 꼭 같이 사세요”라고 말했다. 이송자씨의 북쪽 아들 박위석(61)씨는 “이번에 어머니를 통해 홍씨 가족들을 알게 된 만큼 앞으로 북한에서 자주 왕래할 것”이라고 말하자 홍씨의 두 아들도 흔쾌히 동의했다.

○…최경길(79)씨는 지난 3일간 돌처럼 굳어있던 아내 송옥순(75)씨의 눈에서 드디어 눈물이 흐르자, “내내 못알아보다 이제야 정신이 돌아오다니…”라며 아내를 부여잡고 한탄의 눈물을 흘렸다. 최씨는 “난 앞으로 10년은 걱정없어. 그러니 자네나 약 잘 먹고 몸조리 잘하고 있어”라고 말했고 송씨는 대답 대신 뚝뚝 떨어지는 눈물로 남편과의 훗날을 기약했다.

○…백선숙(51)씨는 평양공항으로 출발하기 위해 버스에 올라타는 아버지 민국(76)씨의 옷자락을 붙잡고 오열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딸은 길바닥에서 아버지에게 큰 절을 올리며 “부디 만수무강하시고 꼭 다시 만납시다”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김성옥(72·여·대전 중구 중촌동)씨는 호텔 로비에서 자신과 가족들의 얼굴 사진이 실린 18일자 노동신문을 펼쳐보며 여동생들과 이별의 슬픔을 나눴다.

○…오전 11시쯤 이산가족들이 탄 버스가 출발하자 고려호텔 앞에 나와 있던 호텔 직원들은 “할아버지, 할머니 건강하세요. 다음에 만납시다”라고 외치며 양팔을 높이 흔들었다. /평양=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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