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6일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공군 성추행 피해자 이모 부사관의 추모소를 찾아 고인의 영정을 바라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 부사관의 부모를 만나 “얼마나 애통하시냐”며 “국가가 지켜주지 못해 죄송하다”는 뜻을 밝혔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은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북한을 언급하지 않았다. 2017년 취임 후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현충일 추념사에서도 6·25전쟁 발발 원인과 북한의 남침(南侵)을 직접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제66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유엔 참전 용사들의 공로를 언급하면서 “(이들의) 애국심과 인류애로 무력 도발과 이념 전쟁에 맞서 승리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무력 도발을 한 주체인 북한은 거론하지 않았다. 대신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향해 다시 큰 걸음을 내디딜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했다. 지난 21일 워싱턴에서 열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첫 한미 정상회담 성과를 거론하며 “바이든 대통령과 저는 대화와 외교가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이루는 유일한 길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북한을 언급하지 않는 것에 대해 여권은 “보훈의 개념을 확장하자는 뜻”이라고 했지만 국민의힘은 논평에서 “정권은 냉엄한 현실은 외면한 채 그저 반쪽짜리 한미 정상회담을 자화자찬하며 북한 바라기와 중국몽을 이어가려 한다”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추념사에서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찾고자 피 흘렸던 우리 국군이 있었다”고 했지만 북한의 책임은 언급하지 않았다.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김기억 중사의 묘소를 참배하며 국가가 국민에게 드릴 수 있는 믿음에 대해 생각했다”고 했던 2018년 추념사도 마찬가지였다.
문 대통령은 2019년 추념사에선 광복군 창설을 언급하며 6·25 기간 북한 국가검열상·노동상으로 전쟁 지휘부 일원이었던 김원봉(1898~1958)을 ‘국군의 뿌리’로 연결시켰다. 문 대통령은 당시 “광복군엔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돼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 역량을 집결했다”며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항쟁 의지, 연합군과 함께 기른 군사적 역량은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됐다”고 했었다.
한편, 문 대통령은 이날 공군 성추행 피해 이모 중사 사망 사건에 대해 직접 사과했다. 문 대통령은 추념사에서 “최근 군내 부실 급식 사례들과, 아직도 일부 남아있어 안타깝고 억울한 죽음을 낳은 병영 문화의 폐습에 대해 국민들께 매우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보훈은 지금 이 순간, 이 땅에서 나라를 지키는 일에 헌신하는 분들의 인권과 일상을 온전히 지켜주는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추념식을 마친 뒤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이 중사의 추모소를 방문해 이 중사 부모에게 “얼마나 애통하시냐”며 “국가가 지켜주지 못해 죄송하다”고 했다. 이 중사 아버지와 어머니는 “딸의 한을 풀고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며 “철저하게 조사해 달라”고 했고, 문 대통령은 “철저하게 조사하겠다”고 했다.
국방부 검찰단은 이 중사 성추행 은폐 혐의로 보직 해임된 공군 20전투비행단 소속 상관 2명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 중사로부터 직접 성추행 신고를 받은 노모 상사, 이 중사 회유에 나섰던 노모 준위다. 노 상사는 당시 이 중사에게 ‘보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고 당시 이 중사 약혼자에게도 합의를 종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노 준위 역시 이 중사를 술자리에 불러 회유하고, 과거 다른 회식 자리에서 본인이 직접 이 중사를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성용 공군참모총장이 지난 4일 이 중사 사건 책임과 관련해 사퇴한 데 이어 조사·문책도 본격화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