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왼쪽에서 셋째) 외교부 장관과 서욱(맨 오른쪽) 국방부 장관이 18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토니 블링컨(왼쪽에서 둘째) 미국 국무장관, 로이드 오스틴(맨 왼쪽) 미국 국방부 장관과 한·미 외교·국방 장관회의 리셉션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정의용(왼쪽에서 셋째) 외교부 장관과 서욱(맨 오른쪽) 국방부 장관이 18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토니 블링컨(왼쪽에서 둘째) 미국 국무장관, 로이드 오스틴(맨 왼쪽) 미국 국방부 장관과 한·미 외교·국방 장관회의 리셉션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미 외교·국방장관이 18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2+2’ 회의를 열고 “한·미 연합 방위 태세 강화에 대한 상호 공약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5년 만에 열린 ‘2+2’ 회담 공동성명엔 북한에 대한 ‘비핵화’란 표현이 들어가지 않았다. ‘중국’이란 표현도 없었다. 지난 16일 열린 미·일 2+2 공동성명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언급하고, 홍콩과 신장 지역의 인권 문제를 거론하며 중국에 직격탄을 날렸던 것과도 차이가 났다.

한·미 외교·국방장관은 이날 공동성명에서 북핵 문제와 관련해 “양국 장관들은 북한 핵·탄도미사일 문제가 동맹의 우선 관심사임을 강조하고, 이 문제에 대처하고 해결한다는 공동의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했다. 2010년부터 2016년까지 4차례 열린 한·미 2+2 회담 공동성명에는 매번 비핵화가 강조됐고, 가장 강력한 표현인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도 명기됐다. 한·미에 앞서 발표된 미·일 공동성명에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약속을 재확인한다”는 표현이 있다.

이날 공동성명에는 중국이란 단어도 들어가지 않았다. 다만 “규범에 기초한 국제 질서를 훼손하고 불안정하게 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한다”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역을 만들기 위해 함께 협력해 나간다”는 우회적인 표현을 썼다. ‘규범에 기초한 국제 질서’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은 미국이 중국을 견제할 때 쓰는 표현이다. 북한 비핵화와 중국 문제에서 두 나라가 합의를 못 한 것으로 분석된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북한 비핵화에 전념할 것”이라고 했고, “중국의 공격적이고 전체주의적인 행위엔 동맹 간 공동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과 이견으로 공동성명에 넣지 못한 말들을 기자회견에서 쏟아낸 것으로 보인다. 블링컨 장관은 이 자리에서 “북한 주민들이 체계적인 (인권)유린을 당하고 있다”며 전날에 이어 북한 인권 문제를 또 제기하기도 했다.

美국무, 회담장 밖에선 “北비핵화 전념” “中에 대항” 돌직구

한·미 외교·국방장관은 18일 공동성명에서 대북 정책과 관련해 “한·미 간 완전히 조율된 대북 전략하에 다루어져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했다. 이는 바꿔 말하면 한·미가 대북 정책에서 조율을 이뤄내지 못했다는 뜻이다. 영어로 약 800단어에 불과한 역대 가장 짧은 성명이 발표된 것도 이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비핵화' 이견 표출에 외교 당국자 “분량 제한 때문”

2010년부터 2016년까지 4차례 열린 한·미 2+2 회담은 대부분 대북 압박이 주요 주제였다. 이 때문에 공동성명엔 매번 비핵화가 강조됐고, 북한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강력한 표현인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도 명기됐다. 이번 한·미 성명에 ‘비핵화’가 빠진 이유를 묻는 질문에 외교 당국자는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이) 공동성명에 반드시 들어가고 아니고는 (정해진 것이) 없다”며 “제한된 분량에 협력을 강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청와대를 방문한 토니 블링컨(가운데) 미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에게 자리를 안내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미국의 두 외교·안보 수장이 우선적으로 한국을 방문한 것은 한미 동맹을 중시하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청와대를 방문한 토니 블링컨(가운데) 미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에게 자리를 안내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미국의 두 외교·안보 수장이 우선적으로 한국을 방문한 것은 한미 동맹을 중시하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했다. /뉴시스

블링컨 국무장관은 그러나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북한의 비핵화에 전념하고 북한이 주는 광범위한 위협을 줄여야 한다”며 “북한 주민은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유린을 당하고 있다”고 했다. 북한 김정은이 가장 껄끄러워하는 인권 문제까지 정면으로 거론한 것이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KBS와의 인터뷰에서 ‘인권 문제로 북한과의 협상이 늦어져도 되는가’란 질문에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외교 정책의 중심에 인권과 민주주의를 되돌려 놓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했다. 북한과의 협상이 늦어지더라도 인권 문제를 계속 제기하겠다는 것이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비핵화 중 어떤 게 한국 입장이냐’라는 질문에 “한반도 비핵화가 올바른 표현”이라며 “북한도 우리처럼 스스로 비핵화하라는 뜻”이라고 했다. 한반도 비핵화는 주로 북한이 주장하는 것으로, 미국의 핵우산을 치우라는 뜻도 포함된다. 정 장관은 2018년 방북 후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블링컨 “중국에 대항” 정의용 “미·중 택일 안돼”

공동성명은 ‘중국’을 직접 거론하지 않고 “규범에 기초한 국제 질서를 훼손하고 불안정하게 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한다” “한·미는 한국의 신남방 정책과 연계 협력을 통한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역을 만들기 위해 함께 협력해 나간다는 결의를 재강조했다”는 우회적 표현을 썼다. ‘규범에 기초한 국제 질서’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은 미국이 중국을 견제할 때 쓰는 표현이다.

2+2 회담에서 드러난 한·미 입장 차

2+2 회담에서 드러난 한·미 입장 차

이 때문에 한국이 사실상 미국의 ‘대(對)중국 민주주의 전선’ 동참 요구를 거부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외교 당국자는 이날 ‘미국이 중국을 공동성명에 명시할 것을 요구했나’란 질문에 “협의 내용은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블링컨 장관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반민주주의적 행동에 대항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며 반중 전선 구축을 요구했다. 그러나 정 장관은 이날 연합뉴스TV 인터뷰에서 “미국은 유일한 동맹국이고 중국은 최대 교역국”이라며 “미국과 중국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반중 연대로 평가받는 미국·일본·인도·호주가 참여하는 쿼드(Quad)에 한국이 동참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정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직접적 논의는 없었다”고 했지만, 블링컨 장관은 “긴밀한 협력”을 언급했다.

◇미 국방 “전작권 전환 시간 더 걸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이날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관련, “전작권 전환이 진전을 이루고 있다”면서도 “전환 조건을 충족하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에 전작권 전환 시기를 결정한다는 우리 정부 입장과 차이가 난다. 이 때문에 양국은 공동성명에 “전작권 전환을 위한 협의를 지속해 나가기로 했다”는 원론적 입장만 담았다.

한·미는 또 공동성명에서 “연합 훈련·연습을 통해 동맹에 대한 모든 공동 위협에 맞서 합동 준비 태세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함을 재강조했다”고 밝혔다. 이는 한·미 연합훈련 규모가 축소되고 ‘컴퓨터 게임화’되는 상황에 우려를 표명하며 훈련 정상화를 촉구했던 미국의 입장이 반영된 결과로 알려졌다. 오스틴 장관은 향후 연합훈련에 대해선 “훈련 계획이나 양상은 한국과 함께 결정할 사안”이라고 했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