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청와대에서 김여정이 전하는 김정은의 친서를 받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청와대에서 김여정이 전하는 김정은의 친서를 받고 있다. /뉴시스

북한 김여정이 16일 한미 연합 훈련을 비난하며 “3년 전 봄날은 다시 돌아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 훈련을 ‘컴퓨터 게임’으로 만들고 ‘한미 훈련도 북과 협의할 수 있다’고까지 했는데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김여정은 “50명 참가든 100명 참가든 전쟁 연습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3년 전 봄날' 같은 쇼를 다시 하려면 한미 훈련을 아예 없애라고 한 것이다. 안보를 포기하라는 요구나 다름없다. 그러면서 문 정부를 향해 “태생적 바보” “판별 능력마저 상실한 떼떼(말더듬이)”라고 조롱했다. 대한민국은 북 집단에 일상적으로, 습관적으로 능멸당하는 나라가 됐다.

그런데 통일부는 이날 “한미 훈련이 어떤 경우에도 군사적 긴장을 조성해선 안 된다”고 했다. ‘한미 훈련은 침략 연습’이란 김여정 주장에 맞장구를 친 것이다. 공격받은 뒤에 반격도 하지 않는다는 ‘키보드 방어 훈련’이 어떻게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나. 올 초 ‘무력 통일’을 천명하고 지금 순간에도 핵 미사일을 증강하고 있는 게 누군가. 그런데도 통일부는 북한 통전부가 할 말을 대신했다.

김여정이 “(대북 전단 금지) 법이라도 만들라”고 하자 통일부는 4시간 만에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열어 ‘그 법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김여정 하명은 그대로 법제화됐다. 김여정이 우리 외교장관의 ‘코로나가 북한을 더 북한답게 만들었다’는 발언을 “계산돼야 할 것”이라고 비난하자 한 달 뒤 장관이 경질됐다. 김여정의 지휘를 받는 김영철이 국방장관을 “경박하고 우매하다”고 비난하자 우리 장관이 교체됐다. 한미 훈련도 김여정 비난에 따라 없어질 수 있다.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는 정권이다. 김여정은 한미 훈련을 하면 자신들 대남 기구인 조평통과 금강산 관광국을 없애고, 남북 군사 합의서를 파기하겠다고 했다. 문 정권이 업적으로 선전하는 군사 합의나 대북 채널, 집착하는 금강산 관광 등을 건드리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김여정은 미 바이든 행정부가 “4년간 편히 자려면 잠 설칠 일거리를 만들지 않는 게 좋다”고 했다. 오늘 방한하는 미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을 겨냥한 것이다. 5년 만에 열리는 한미 ‘외교+국방장관’ 회담을 앞두고 비핵화 요구 같은 것은 꺼내지도 말라는 것이다. 미·일 외교 국방 장관은 16일 “북의 완전한 비핵화 실현 결의를 확인했다”고 했다. 하지만 북핵의 피해자인 한국의 정부에선 ‘비핵화'란 말이 금기어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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