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법이 제정된 지 곧 5주년을 맞지만 이 법의 ‘심장’인 북한인권재단은 간판도 달지 못하고 있다. 재단 이사진 12명 가운데 10명에 대한 추천권을 가진 여야가 이견을 못 좁히고 있기 때문이다. 주무 부서인 통일부는 국회에 책임을 미루고, 여야는 상대방을 탓하는 상황이 5년째 이어지고 있다.

14일 서울 마포에 있는 북한인권재단 사무실이 텅 비워진 채 문이 잠겨 있다.
문도 한번 못 열어보고… 서울 마포에 있던 북한인권재단 사무실이 텅 비워진 채 문이 잠겨 있다. 통일부는 여야 갈등으로 재단 출범이 약 2년간 미뤄지자 비용 절감을 이유로 사무실 임대차 계약을 해지했다./이진한기자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23일 “일말의 개선 조짐조차 없는 북한 인권 상황을 방치할 수는 없다”며 “법이 정한 자격을 갖춘 (재단) 이사 5명을 내일까지 추천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수차례 북한인권재단 이사 임명을 (여당에) 요구했지만, 민주당이 묵살하고 있고 공수처장과 동시에 임명하자던 약속까지 깨버린 상태”라고 했다.

북한인권재단은 11년간 국회에 계류되다 2016년 통과된 북한인권법에 따라 설립되는 법정 기구다. 북한 인권 실태 조사, 인권 개선 관련 연구·정책 개발,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 등을 수행한다. 재단 이사진은 통일부 장관이 2명, 여야가 각 5명씩 추천하게 돼 있다.

민주당은 2005년 북한인권법 발의 이후 줄곧 국회 통과에 반대했고, 법 제정 뒤에도 이사 추천을 미루는 등 재단 출범에 소극적이란 비판을 받았다. 야당 관계자는 “여당이 재단 설립을 반길 리 없는 김정은 정권을 지나치게 의식한다”고 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국회가 뜻을 모아주면 재단 출범을 할 수 있게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단 출범 지연의 원인이 국회에 있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하지만 통일부도 재단이 5년째 표류 중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이다. 야당 관계자는 “통일부가 이사진 명단을 달라는 공문을 국회에 보낸 것 말고 한 게 뭐가 있느냐”며 “여당 원내대표 출신의 이인영 장관이 부임한 지 7개월이 되도록 아무 진전이 없는 걸 보면 재단 설립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앞서 통일부는 2018년 서울 마포구에 마련했던 재단 사무실을 예산 절감을 이유로 폐쇄했다. 전직 통일부 관리는 “사무실 철수는 정부가 재단 출범을 포기했다는 인상을 풍긴다”며 “국회에 이사진 구성을 압박하기 위해서라도 사무실을 유지하는 게 좋았다”고 했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