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욱 국방부 장관은 23일 북한 남성이 최근 강원도 고성 육군 22사단의 경계망을 뚫고 귀순하는 과정에서 우리 군을 피해 다닌 것과 관련, “확인한 바에 따르면 (당사자가) 군 초소에 들어가 귀순하면 다시 북한으로 돌려보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민가로 가려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국회 국방위에 출석한 서 장관은 ‘귀순 남성이 우리 군을 믿지 못하는 것이냐’는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의 질문에 “그럴 수 있다. 군이 무장을 하니 총에 맞을 수도 있고…”라며 이같이 답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이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이덕훈 기자
서욱 국방부 장관이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이덕훈 기자

하 의원은 “우리가 (귀순 의사를 밝힌) 탈북민들을 북한으로 되돌려 보내지 않았느냐”며 “(귀순자들이) 우리 군을 굉장히 의심하는 것이다. 그 의심 때문에 탈북을 하지 못하는 게 많다면 굉장히 충격적”이라고 했다.

앞서 정부는 2019년 11월 귀순 의사를 밝힌 탈북 선원 2명을 흉악범이란 이유로 강제 북송했다.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으로 이 업무를 총괄한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최근에도 “이 사람들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안 봤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당시 사건이 북에도 알려지며 탈북을 준비·시도하는 주민들에게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고위 탈북민 A씨는 “북한이 문제의 북송 사건을 계기로 ‘이젠 남조선으로 도망가도 소용없다’는 내용의 강연회, 학습, 총화에 나섰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날 합동참모본부가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제의 북한 남성은 지난 16일 고성 해안으로 귀순할 당시 감시 및 경계용 카메라(CCTV)에 10차례 포착됐지만 군은 8번 놓쳤다. 특히 CCTV에 포착된 뒤 두 차례나 경보음이 울렸지만 감시병은 이를 무시하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서욱 장관은 “감시병이 귀순자를 출퇴근하는 간부로 생각해 방심했다”고 했다.

군은 또 이 남성이 해안으로 올라온 뒤 민간인통제선 소초까지 이동해 식별될 때까지 3시간 11분 동안이나 모르고 있었고, 소초에서 포착된 지 34분 만에야 사단장에게 보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군 감시 장비에서 북한 남성을 처음으로 확인한 뒤 실제 신병을 확보하는 데에도 약 3시간이나 걸려 경계 실패는 물론 늑장 대응 등 군의 작전 대응 태세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확인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2019년 北요청 없었는데도 탈북 어민 북송

우리 정부가 지난 2019년 11월 오징어잡이 배에서 동료 선원 16명을 살해한 혐의로 귀순 의사를 밝힌 북한 어민 2명을 강제 북송했던 것이 탈북을 준비하는 북한 주민들에게 심리적 압박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시 정부는 북한 어민 2명 나포 이틀 만에 북한의 요청이 없던 상황에서 개성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추방 의사를 타진했고, 북한은 다음 날 수용 의사를 밝혔다. 정부는 이들의 눈에 안대를 씌우고 포승줄에 묶은 채로 판문점을 통해 이들을 강제 북송했다. 판문점 군사분계선 부근에서 비로소 안대가 풀려 북한행을 깨달은 탈북 선원들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들의 추방 사실이 알려진 계기도 공동경비구역(JSA) 대대장(중령)이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에게 보낸 문자메시지가 언론 카메라에 포착돼 보도되면서다. 이들의 전격 북송에 대해 야당에선 “남북 관계에 악재(惡材)가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정부는 북송 어민의 탈북 및 북송 과정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발언 내용을 번복하기도 했다.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은 그해 11월 8일 “신문을 받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상반된 진술이 있었지만 ‘죽더라도 돌아가겠다’는 진술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흘 뒤 통일부 당국자는 “‘죽더라도 조국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은 그 이전 행적 조사에서 자기들끼리 한 얘기를 전해 들은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해상에서 선원 16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북한 주민 2명이 타고 온 선박에 대해 혈흔 감식 등 정밀 조사를 실시하지 않고 북측에 인계한 것으로도 확인됐다.

북한인권단체총연합회는 지난해 3월 북한 어민 강제 북송과 관련해 정의용 당시 국가안보실장 등 안보 라인 핵심 4인을 기소·처벌해 달라는 청원서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출했다. 한반도통일을준비하는변호사협회(한변)는 북한 어민 강제 북송과 관련해 국가인권위에 긴급구제신청서까지 제출했지만 인권위는 지난 1월 초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며 기각했다.

정의용 외교장관은 최근 인사청문회에서 “이 사람들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안 봤다”며 “헌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을 갖추지 못했고 일반 탈북민하고는 다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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