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가 공개한 ‘북한 원전 건설 문건’을 보면 ‘구체적 추진에는 한계가 있다’는 단서가 달려 있다. ‘내부 검토 자료’라고도 적혀 있다. 그럼에도 17건의 문건이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직후인 5월 2~15일 집중 작성됐다는 점이 예사롭지 않다. 상부나 또는 그 윗선으로부터 지시를 받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원자력국 실무자들은 문건 작성 불과 한 달여 전 월성 1호기를 2년 반 더 가동시키자고 했다가 장관에게 “너 죽을래” 협박까지 들었다.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 한 기 5조원짜리 원전을 북한에 지어주자는 아이디어를 자발적으로 낼 수 있었겠나.
탈원전 정권에서 북한 원전 건설 발상이 나왔다는 것은 탈원전이 얼마나 준비되지 않은 혼란스러운 정책인지를 보여준다. 문건 작성 시점은 산업부가 회계법인과 한수원을 협박해 월성 1호기 경제성평가를 조작하던 때였다. 가장 황당한 것은 이 정권이 공사를 중단시킨 신한울 3·4호기 설비들을 북한에 넘겨주자고 한 것이다. 또 완공 후에 생산 전력을 북한에 보내주자고 한 것도 마찬가지다. 탈원전 정권의 행태가 정말 뒤죽박죽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17건 문건의 존재는 검찰이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혐의로 산업부 공무원들을 기소할 때의 공소장 기록에서 확인된 것이다. 야당으로선 당연히 의문을 제기해야 할 사안이다. 산업부 공무원들이 문건들을 다 삭제해버린 것도 그 속에 뭔가 감춰야 할 중요한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밖에 없다. 문서 목록에는 ‘KEDO 관련 업무 경험자 명단’도 있었다. 정부가 구체적인 추진을 염두에 두고 움직였다고 봐야 할 정황이다. 더구나 청와대는 “도보다리 회담을 전후해 북측에 전달한 신경제 구상에 발전소 관련 내용이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의문 제기에 대해 “구시대의 유물 같은 정치”라고 했다. 청와대는 북에 준 USB를 공개하려면 “야당이 명운을 걸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도박판에서 판돈을 한껏 키워 상대의 기를 죽이려는 수법과 다를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