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미 연합훈련 중단 문제를 “필요하면 남북 군사공동위를 통해 북한과 협의할 수 있다”고 했다. 김정은이 노동당 대회에서 “미국과의 합동 군사훈련을 중지해야 한다”고 압박한 데 대한 답변이다. 군 통수권자가 적의 위협에 대한 방어 훈련을 적과 협의하겠다고 한 것이다.
북이 핵 무기, 시설 전부를 신고하는 등 진정한 비핵화 조치를 취해 한반도에 평화 체제가 자리 잡아 간다면 한미 연합 훈련도 당연히 논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은 당 대회에서 36차례나 핵을 언급했다. 순전히 우리를 겨냥한 전술핵 개발까지 천명했다. 핵 추진 잠수함, 극초음속 무기 개발도 공언하며 무력에 기반한 통일을 선언했다. 현재 우리 독자적으로는 북의 핵 미사일 공격을 막을 방법이 없어 김정은의 말이 허세로 들리지 않는다. 미군과의 연합 훈련 강화만이 북의 위협에 대처할 수 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미국 아닌 북한과 ‘훈련 협의’를 하겠다는 것이다.
2018년 남북 군사 합의에는 “군사 훈련 및 무력 증강 문제는 ‘남북 군사공동위’를 가동해 협의한다”고 돼 있다. 그런데 “적대 행위 전면 중단”을 약속한 군사 합의 자체가 북 도발로 의미가 없어졌다. 김정은은 “남한에 경고”라며 신형 미사일을 무더기로 쐈고 군사 합의에서 금지한 전방 해안포 훈련도 했다. 그때마다 문 정권은 군사공동위를 통해 항의하기는커녕 “합의 위반이 아니다”라며 북을 두둔했다. 그래놓고 김정은이 ‘한미 훈련 중단’을 요구하자 ‘군사공동위 협의'를 꺼내들었다. 김여정 한마디에 ‘대북 전단 금지법’을 만든 것 그대로다.
2007년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 당시 ‘문재인 비서실장 주도로 북한에 물어보고 기권으로 결정했다'는 논란이 지난 대선에서 불거졌다. 문 대통령은 ‘기권’으로 결정된 뒤에 북한 입장을 묻는 전통문을 보냈다고 부인했다. 먼저 물어본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한미 훈련마저 북과 사전 협의할 수 있다는 문 대통령의 말을 듣고 보니 인권 표결을 북에 물어보고 정하는 건 별일도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