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미 연합훈련 중단 문제를 “필요하면 남북 군사공동위를 통해 북한과 협의할 수 있다”고 했다. 김정은이 노동당 대회에서 “미국과의 합동 군사훈련을 중지해야 한다”고 압박한 데 대한 답변이다. 군 통수권자가 적의 위협에 대한 방어 훈련을 적과 협의하겠다고 한 것이다.

북이 핵 무기, 시설 전부를 신고하는 등 진정한 비핵화 조치를 취해 한반도에 평화 체제가 자리 잡아 간다면 한미 연합 훈련도 당연히 논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은 당 대회에서 36차례나 핵을 언급했다. 순전히 우리를 겨냥한 전술핵 개발까지 천명했다. 핵 추진 잠수함, 극초음속 무기 개발도 공언하며 무력에 기반한 통일을 선언했다. 현재 우리 독자적으로는 북의 핵 미사일 공격을 막을 방법이 없어 김정은의 말이 허세로 들리지 않는다. 미군과의 연합 훈련 강화만이 북의 위협에 대처할 수 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미국 아닌 북한과 ‘훈련 협의’를 하겠다는 것이다.

2018년 남북 군사 합의에는 “군사 훈련 및 무력 증강 문제는 ‘남북 군사공동위’를 가동해 협의한다”고 돼 있다. 그런데 “적대 행위 전면 중단”을 약속한 군사 합의 자체가 북 도발로 의미가 없어졌다. 김정은은 “남한에 경고”라며 신형 미사일을 무더기로 쐈고 군사 합의에서 금지한 전방 해안포 훈련도 했다. 그때마다 문 정권은 군사공동위를 통해 항의하기는커녕 “합의 위반이 아니다”라며 북을 두둔했다. 그래놓고 김정은이 ‘한미 훈련 중단’을 요구하자 ‘군사공동위 협의'를 꺼내들었다. 김여정 한마디에 ‘대북 전단 금지법’을 만든 것 그대로다.

한미 동맹의 버팀목이던 3대 연합 훈련은 트럼프와 김정은의 ‘싱가포르 쇼’로 전부 폐지됐다. 비핵화를 위해서라고 했는데 북핵은 오히려 증강됐다. 트럼프는 바이든 승리를 끝까지 인정 않고 폭동 선동 혐의로 탄핵 과정에 있다. 그런 트럼프 정책을 이어가자고 하는 한국 정부를 바이든 대통령은 어떤 눈으로 보겠나.

2007년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 당시 ‘문재인 비서실장 주도로 북한에 물어보고 기권으로 결정했다'는 논란이 지난 대선에서 불거졌다. 문 대통령은 ‘기권’으로 결정된 뒤에 북한 입장을 묻는 전통문을 보냈다고 부인했다. 먼저 물어본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한미 훈련마저 북과 사전 협의할 수 있다는 문 대통령의 말을 듣고 보니 인권 표결을 북에 물어보고 정하는 건 별일도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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