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국정원장 내정자가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 당시 사전 준비회담 남측 대표로서 북측에 30억달러 경제 지원을 약속했다는 합의 문서를 야당이 공개했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다. 2000년 당시 박지원 문화부장관과 북측 아태위원회 부위원장 송호경이 각각 서명한 '경제협력에 관한 합의서'엔 '남측은 북측에 2000년 6월부터 3년 동안 25억달러 규모의 투자 및 경제협력차관을 제공하고, 정상회담을 계기로 5억달러를 제공한다'고 적혀 있다. 박 내정자는 이 합의서에 서명한 사실이 "기억나지 않는다"면서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나를 모함하기 위해 조작된 문서"라고도 했다. 하지만 이 합의서는 이미 공개된 다른 합의서와 북한식 표현, 활자체, 그리고 박 내정자와 송 부위원장의 서명 필체가 일치하고 있다.

1차 정상회담 대가로 4억5000만달러를 북측에 송금한 사실로 박 내정자는 징역형을 살았다. 그것과 별도로 25억달러 투자 및 차관을 약속했다는 의혹이 추가로 제기된 것이다. 김대중 정부 때 식량 차관, 무상 지원, 투자 등의 명목으로 북에 지원한 금액이 11억달러, 남북 교역 및 금강산 관광 규모는 9억달러 정도였다. 단기간에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20억달러가량이 북에 흘러간 것이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정상회담에 따른 25억달러 추가 지원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차별 속성 지원이 이뤄진 셈이다. 4억5000만달러 대북 송금을 밝힌 전 산업은행 총재는 회고록에서 '(정부가) 현대그룹 외에 S그룹에도 대북 사업 참여를 압박했다'고 썼다. 이 모든 정황은 이날 공개된 30억달러 대북 지원 합의 문서를 뒷받침하고 있다.

박 내정자가 이런 밀약을 20년 동안 숨겨 왔다면 국정원장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상실한다. 비밀 합의서의 또 한쪽을 보관하고 있을 북은 그것을 빌미로 박 국정원장을 협박해서 우리 대북 안보의 최일선을 무력화시키려 할 것이다. 정부는 당장 20년 만에 불거진 남북 비밀 합의의 진위 여부를 철저히 가려야 한다. 마음만 먹으면 몇 시간도 걸리지 않을 일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7/27/202007270392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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