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대표하는 국제정치학자 이노구치 다카시(저구효·55) 도쿄대학 교수는 21세기가 ‘아시아의 시대’가 될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미국의 일극패권은 점차 약해지는 반면 한·중·일이 아세안과 손잡고 지역협력의 틀을 만들어내며 리더십을 발휘해갈 것이라고 전망한다. “문제는 민주화에 수반될 중국의 사회불안 우려”라는 그에게 21세기에 펼쳐질 동북아 질서의 미래상을 들어보았다. /편집자

【동경=박정훈기자】

―세기의 전환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여러 설명법이 있지만 나는 ‘에너지에서 전자통신의 시대로’라는 관점을 제시하고 싶다. 20세기는 석탄·석유가 인류발전의 기초가 된 에너지의 시대였다. 이런 에너지원을 발견하면서 공업화와 무역과 무기체계가 무서운 속도로 진전했다. 화석연료에 의해 인간의 활동영역이 폭발적으로 확대된 시대였다. ”

―그렇다면 21세기는?

“인류 활동의 주엔진이 에너지에서 일렉트로닉 디바이스(전자기기)로 바뀐다. 전자통신수단을 사용한 정보화가 인류활동을 폭발시킬 것이다. 이것이 전쟁과 평화, 발전과 빈곤의 어느 방향으로 인도할지는 인류가 하기 나름이다. 분명한 것은 전자통신의 시대에선 지구가 실질적 의미에서 하나가 된다는 사실이다. ”

―무엇이 국가나 기업의 승패를 좌우하는가.

“20세기엔 석유를 빨리, 대량으로 손에 쥘 수 있는 능력이 승리의 조건이었다. 21세기엔 전자통신 시스템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능력, 그리고 교묘하게 활용하는 기법을 보유한 정부와 기업이 승자가 된다. 경쟁자간 격차는 점점 벌어질 것이다. 전자통신의 물결을 빨리 탄 나라는 빠른 성장이 보장된다. 반면 한번 뒤처지면 치명타를 입어 걷잡을 수 없이 뒤떨어질 것이다. ”

―당신은 저서에서 20세기 말의 세계변동을 통해 21세기의 흐름을 예언하고 있는데.

“20세기 말 세계질서엔 3가지 극적인 ‘종언(종언)’이 찾아왔다. 냉전과 지리와 역사의 종언이다. 냉전의 종언은 ‘미국의 승리’, 지리의 종언은 ‘경제활동에서 거리라는 횡포의 소멸’, 역사의 종언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승리’를 각각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런 세계변동의 큰 흐름은 아마 21세기에도 이어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20세기 말에 이미 21세기라는 시대를 내다볼 수 있는 나침반을 제공받은 셈이다. ”

―그 나침반에는 무엇이 그려져 있는가.

“20세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열거해보자. 20세기는 ‘전쟁의 시대’였다. 20세기에 전쟁으로 죽은 사람 수는 그 이전 모든 시대를 합친 전쟁 사망자보다 많았다. 20세기는 ‘국가의 시대’였다. 20세기 초 50개 남짓하던 독립국가는 200개로 늘어났고, 국가란 이름으로 많은 비인도적 범죄가 실행됐다. 20세기는 ‘민족주의의 시대’였다. 사라졌던 악마가 땅 위에 소생하듯 민족주의가 자기주장을 폈던 시대였다. 아울러 20세기는 ‘민주주의의 시대’였다. ”

―이런 20세기적 특징이 21세기에도 유지된다는 뜻인가.

“모든 20세기적 요소가 21세기에도 생명력을 유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21세기는 이런 20세기의 특징에 ‘선택적으로 반발’하고, ‘선택적으로 계승’하며 펼쳐질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20세기가 ‘기술진보의 시대’였다는 개념이라고 본다. 20세기를 살았던 사람들은 잡음투성이 라디오에서 인공위성TV까지 경험할 수 있었다. 전쟁의 주체는 소총에서 전략핵병기로 바뀌었다. 21세기는 더욱 어지러울 정도로 전개되는 기술진보의 시대가 될 것이다. 기술진보는 안전보장과 세계경제 시스템에서 국내 정치구조까지 많은 것을 바꿔놓을 것이다. ”

―‘미국의 시대’는 계속되나.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는 당분간 이어진다. 그러나 안정적이고 평온한 일극체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 ‘팍스 아메리카나’는 비교적 분권적인 질서를 기초로 한다는 특징이 있다. 반드시 워싱턴에서 모든 것을 강압적으로 강요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이는 미국이 다소의 실패와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WTO(세계무역기구) 시애틀 회의의 실패도 이런 일면의 표출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유일한 패권국인 미국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때때로 벌어질 수 있다. ”

―동아시아엔 안정이 찾아오는가.

“하지만 대단히 무서운 시나리오도 잠복해 있다. 시장경제가 진전되면서 중국 역시 정치사회적 민주화의 방향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다. 그 과정에서 중국사회는 질서혼란과 불안정의 길을 걸을 수도 있다. 예컨대 10~20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폭동이 일어나기라도 하면 중국의 인민해방군으로는 진압이 불가능하다. 이런 민주화 움직임이 확산되면 중국 전체가 혼란의 무대로 변할 수 있다. 이것이 가장 무섭다. ”

―중국의 군사적 위협보다 사회불안이 더 염려된다는 뜻인가.

“그렇다.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비롯한 군사적 위협도 문제지만, 적어도 20∼30년간은 민주화에 수반될 사회적 불안정화가 더 걱정된다. 경제적 발전이 빠를수록 사회적 해체도 나타나기 쉬운 법이다. 대량의 농민이 대도시에 유입해 직장을 못찾는다든지 하는 등의 우려할만한 재료가 점차 대두하고 있다. ”

―중국의 ‘하드랜딩(불시착)’ 시나리오를 믿는가.

“물론 이런 비관적 시나리오는 가능성 면에선 높지는 않다. 3%나 5%쯤 될까. 그러나 일단 벌어지면 누구도 제어하기 힘든 파괴력을 갖고 있다. 예컨대 중국 전역에 폭동이 벌어질 경우 국제사회가 개입하기란 쉽지 않다. 일본의 ODA(정부개발원조) 자금은 비상시엔 카드가 될 수 없으며, 미국이 군사개입하기에 중국은 너무 넓다. 3∼5%의 가능성이 현실로 나타나기 전에 무언가 대비를 해야 한다. ”

―중국의 ‘소프트랜딩(연착륙)’ 시나리오란?

“중국 공산당이 지배력을 갖고 질서 있는 사회변혁을 주도한다. 경제적 안정성장이 이어지고 계층·지역간 격차확대도 어떻게든 제동을 거는 데 성공한다. WTO와 세계인권기구에도 무사히 가입한다. 요컨대 중국 정부와 공산당 주도 아래 자유·민주화가 진전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다. ”

―북한 변수는 어떻게 전망하나.

“그것은 한-미-일이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많은 부분이 달려 있다. 우선 ‘당근’으로 북한의 합리적 반응을 축적시켜 북한 정권을 좀더 안정되게 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기아(기아)가 가장 큰 불안재료다. 북한이 파탄에 빠지지 않도록 식량과 에너지 공급이 좀더 안정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반면 북한이 모략적 행동에 나서면 따끔하고 즉각적인 벌이 가해진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시켜야 한다. ”

―일본의 20세기는 ‘탈아입구(탈아입구)’ 시대였다. 하지만 최근엔 아시아 회귀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20세기는 일본에 ‘아시아를 발판으로’ 구미와 경쟁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21세기는 ‘아시아와 함께’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일본뿐 아니라 한국과 중국에도 아시아라는 무대와 시장은 너무 좁다. 아시아를 넘어서지 않으면 안된다. ‘아시아를 초월해서(Beyond Asia)’라는 슬로건 아래 함께 손을 잡아야 한다. 일본, 한국, 중국이 제각각 뛰어서는 힘을 발휘할 수 없다. ”

―어떻게 손을 잡는가.

“역시 ‘아세안+3(한-중-일)’이나 APEC(아·태경제협력회의) 등에서 지역협력의 원초적 형태를 찾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북한까지 끌어들여 ‘아세안+4’의 포맷이 실현된다면 잠재력이 있을 것으로 본다. 또 한·일간에 논의되는 자유무역 구상이나 도시간 협력 같은 국지적 형태의 틀도 지역협력의 도구로 발전시킬 수 있다. 유럽이나 미주지역이 그랬듯이 동아시아에서도 국가단위를 넘어 지역 차원에서 무언가를 해나가자는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생각한다. ”

―아시아의 지역협력을 제고하기 위해 일본은 무엇을 할 수 있나.

“일본의 리더십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일본이 행동으로 아시아에서 신뢰받는 방법밖에 없다. 20세기는 일본이 말로, 입으로 아시아에 사죄했다. 21세기엔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여야 한다. 아시아 각국이 상호간의 행동으로 우호-협력관계에 관한 공약(커미트먼트)를 강화하는 단계에 접어들어야 한다. ”

―아시아의 시대는 가능한가.

“21세기 중 반드시 온다. 방콕-뉴델리, 싱가포르-뭄바이처럼 동남아와 서남아시아 사이엔 이미 연계 강화 움직임이 본격화했다. 여기에 동북아시아를 접목한다. 작년 ‘아세안+3’ 정상회담은 아시아의 시대를 개막하기 위한 뜻있는 첫 걸음이었다고 본다. ”

/jh-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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