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하루 앞둔 17일, 남측 가족들은 북측 상봉자들에게 줄 선물을 바꿔 준비하느라 소동을 벌였다. 미리 준비한 생필품 대신 이번 상봉기간 동안 북측 가족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물건이 무엇인지를 파악한 뒤 전국을 수소문하기도 했다.

북한 최고 화가 정창모(68)씨 가족은 붓 세개를 준비했다. 16일 개별 상봉 때 남한의 조카 정진규(29·화가)씨가 “북한붓이 좋아보이지 않는다”고 말하자 “솜씨 없는 목수가 연장 나무란다”며 “북한붓도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카 정씨는 급히 고향 전주에 전화를 걸어 최고급 붓을 택배로 전달받은 뒤, 대나무로 된 붓말이에 싸서 선물했다.

국어학자 유열(82)씨 딸 인자(59)씨는 상봉 마지막날 급히 안경과 양복정장을 준비했다. 유인자씨는 “전날 보니 아버지의 양복이 낡았고 안경이 무거운지 자꾸 콧잔등에 흘러내려 안타까웠다”고 했다. 남측 가족들은 곧바로 유열씨의 치수를 잰 뒤 서둘러 양복을 주문했고, 안경도 마련했다.

하지만 일부 북측 가족들은 남측 가족의 선물을 마다했다. 북한의 형을 위해 금 60여돈쭝에 옷가지와 고향-부모님 묘소 등을 찍은 비디오 등을 준비했지만 “동생들에게 폐끼치고 싶지 않다. 지도자 동지 덕에 잘 살고 있다”는 형의 말에 마음을 돌린 남측 동생도 있다. 남측 가족들은 한결같이 “북한 당국에 책잡혀 다시 보지 못하게 될까봐 억지로 참았다”고 했다.

/한재현기자 rooki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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