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석자) 송영대 - 전 통일부 차관 , 서진영 - 고려대 교수 , 이경남 - 이산상봉추진회장

▲송영대 전 차관=이번 이산가족 교환방문은, 이산가족 문제야말로 남·북한 사이에 정치·경제·군사 문제보다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인식을 재확인할 수 있는 계기였다. 이산가족 문제를 근본적이고 종합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 같다.

▲이경남 회장=나는 실향민이라 느낌이 유별났다.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란 말이 있다. 격정이 가라앉으면서 이럴수록 냉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상봉과정에서 많은 실향민들이 이 문제는 뜨겁고도 차가운 문제라고 전화해왔다. 감동의 겉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행사가 끝난 뒤 정부, 언론뿐 아니라 국민 모두 냉철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서진영 교수=세계적인 휴먼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는 왜 이런 식으로 살아왔고, 살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이념과 체제의 장벽은 엄청난 희생을 강요하지만 가족간의 왕래와 만남은 인권적 차원이다. 이걸 방치해왔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경제교류도 중요하지만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그 이전에 해결해야 할 근원적 문제다.

▲이=실향민 입장에서 볼 때 이번 상봉의 양태가 15년 전 상봉 때와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이번에는 북한 김정일(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비행기 직항로를 주선하는 등 세부적인 부분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었지만 기본 줄기는 똑같다. 제한된 사람들이 며칠 동안 교환방문을 했고 집에는 가지 못했다. 이후 편지왕래도 안 된다. 분위기만 달라졌을 뿐이다. 기어가는 벌레는 눈앞밖에 보지 못하지만, 나는 새는 사물을 종합적, 입체적으로 내려다 본다. 이번 상봉을 하늘에서 보면 감동적인 장면뿐 아니라 상봉에 참여하지 못하고 시큰둥한 사람들, 눈물짓는 사람들이 다 보인다. 눈앞의 감동만 보고 전부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 궤도가 잘못 부설되면 두고두고 후환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깔고 이산가족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송=이산의 아픔을 말하기보다 그 아픔이 왜 발생했는지 원인을 생각해야 한다. 30년 가까이 적십자회담을 통해 이산가족 문제를 논의했지만 해결되지 않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본질 문제를 검토해야 한다. 우리는 순수 인도주의 문제로 봤으나 북한은 고도의 정치문제로 인식했다. 북한은 70~80년대에 줄기차게 ‘법률적·사회적 조건환경 개선론’이라는 것을 제기했다.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남한의 반공태세 철폐, 군사훈련 철폐, 주한미군 철수 등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이번에 북에서 내려온 100명은 북에서 성공한 사람들이다. 일종의 ‘북한 드림’이 실현된 경우라고나 할까. 반대로 북한을 방문한 우리쪽 사람들은 ‘내가 너희들을 버리고 왔으니 사죄하러 간다’는 생각으로 간 사람이 많았다. 또 이번에 남쪽의 월북자(또는 납북자) 가족은 정신적으로 사실상 복권(복권)된 분위기다. 그러나 저쪽의 월남자 가족은 그런가. 이런 점들이 우리 내부에서 인식의 분화를 만들지 않을까 걱정된다. 한 가지 더, 우리 이북 도민들은 월남해서 공산주의에 맞서 이데올로기 투쟁의 선봉에 섰고, 나라를 세우고 지키는 데 중요한 지주였으며 이후 사회 안정을 위해 많은 힘을 기울였다. 그런데 부지불식간에 그런 게 다 사라지고 이젠 마치 우리가 국제적 의미에서의 난민처럼, 보호대상자처럼 비쳐지게 되는 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도 문제다.

▲서=이번 행사를 보면서 정치적 상징성이 있는 이벤트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인원, 장소, 일정 모두 엄격히 디자인됐다. 북에서 오신 분들은 훈련받은 듯한 얘기들을 했다. 북한은 특히 북한과 통일문제에 대한 한국사회의 인식을 상당히 변화시킬 수 있는 계기로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 문제는 김정일 위원장의 시혜로 이번 상봉이 이뤄지는 것처럼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점이다. 지난번 언론사 사장단 방북 때 김정일 위원장이 9~10월에도 두 번 더 상봉을 해줄 수 있는 것처럼 얘기했다. 우리 정부는 한마디도 안 했는데 북쪽의 정치적 결정에 의해 시혜처럼 해줄 수도 있고 언제든 취소될 수도 있는 형태로 가서는 안 된다. 정규화, 제도화로 가야 한다. 과거 동·서독이나 지금 중국과 대만(대만) 사이를 보더라도 이산가족 문제는 TV드라마처럼 필요에 따라 한번씩 하는 행사가 돼서는 안 된다. 중국과 대만의 정치적 긴장도는 매우 높지만 가족 왕래는 자유롭다. 통일 전 동·서독도 마찬가지였다. 남북관계가 어떻게 변하든 상관없이 서신교환과 왕래를 확장시켜나가는 일을 해야 한다. 양쪽 정권간 호의에 의해 만남이 이뤄지는 형태여서는 곤란하다.

▲송=이번에 북한이 이산가족 교환 방문에 응한 이유를 세 가지로 본다. 첫째로 남한에 있는 장기수 송환을 위한 하나의 협상 카드로 활용하려는 목적, 둘째는 남측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획득하기 위한 분위기 조성, 셋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미지 개선 등이다. 북한은 이번 남쪽 방문자 100명을 주로 월북자이면서 북에서 사회적 지위를 누리는 사람들로 구성했다. 특히 단장은 우리 체제를 저버리고 그쪽 체제를 택해 간 사람을 골라 보냈다. 이는 북한이 아직도 이산가족 문제에 정치문제를 개입시키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산가족 문제의 탈(탈)정치화가 시급하다.

▲이=한가지 제안하고 싶다. 이번에 만난 남북의 200가족만이라도 서신교환을 하게 하자는 것이다. 이산가족 문제는 대체로 생사확인, 서신 및 소포 교환, 단체 교환 방문, 면회소 운영, 고향 방문, 자유의사에 의한 가족결합이라는 여섯 단계로 설정된다. 그 중 생사확인과 서신교환이 절반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200가족의 서신교환이 정례화되면 향후 이산가족 상봉의 제도화에 좋은 그루터기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서=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 지적된 대로 이산가족 문제의 탈정치화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납북자, 국군포로 등 자기 의사에 반해 북에 가게 된 사람들의 고통이 배제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줄기차게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들고 나와 북에 충성하는 사람을 끝까지 버리지 않는다는 인식을 심어줬고 끝내 송환을 관철했다. 또 일본은 북한에 납치된 몇 안 되는 사람들 문제를 일·북 수교의 주요 조건으로 걸고 있다. 우리는 뭐냐. 정부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자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이고, 그래야 국민이 나라에 충성한다. 정부는 이들을 송환시키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을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송=문제는 앞으로다. 이산가족 문제 해결의 방향은 1972년 적십자 회담에서 이미 합의한 의제 5개항에 다 담겨 있다. ①생사 및 주소 확인 ②편지교환 ③교환방문 및 상봉 ④재결합 ⑤기타 인도적 문제 등 5개항을 조건 없이 이행하면 1000만 이산가족의 고통은 해결될 수 있다. 그리고 그 후 적십자회담에서 이를 실행하기 위한 기구로 적십자 공동위원회와 적십자 판문점 공동사업소 설치에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북한은 이후 남한의 국가보안법, 반공법 철폐 등을 선행조건으로 들며 거부했다. 그러다가 90년대 중반 이후엔 북한이 공산권 붕괴 과정을 보면서 이산가족 상봉이 남(남)으로부터 자유바람을 유입해 체제 불안의 요인이 된다는 점에서 더욱 부정적으로 굳어졌다.

그렇다면 차선책을 생각해야 한다. 나는 그게 쌍방이 원칙적으로 이미 합의한 면회소 기능의 다양화라고 생각한다. 면회소에서 일정 인원을 상봉시킬 뿐 아니라 여타 다수 이산가족들에 대한 생사·주소 확인, 서신교환 업무도 담당토록 하는 것이다. 송금 기능도 수행할 수 있다. 면회소를 이미 쌍방이 합의한 ‘적십자 공동사업소‘의 성격으로 확대시키는 개념이다. 여기서 빠진 것은 교환방문 문제인데, 일단 65세 고령자들에 대해 생일이나 기일(기일)과 같은 가족적인 일이 있을 때 서로 방문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는 동·서독이 분단 이후 처음 시도했던 일이다. 북한의 부담도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다.

▲이=실향민들의 진심과 정서도 고려됐으면 한다. 실향민들은 자신들의 월남동기와 50년 생존의 가치성이 훼손될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고 있다. 이번 상봉이 끝난 후 정부와 학계, 언론계, 그리고 실향민 대표가 참석하는 토론회를 몇번이든 가졌으면 좋겠다.

▲송=북한 당국은 이산가족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탈정치화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 더 많다는 점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이산가족 교류가 확대되면 헤아릴 수 없는 정치·경제적 이익이 북한에 돌아갈 것이다. 아울러 우리 정부의 태도도 좀더 실용주의적으로 전환되는 게 바람직하다. 대북 경제지원과 이산가족 문제를 연계시키는 상호주의로 나가는 게 필요하다. 서독이 동독에 1984년 9억5000만마르크의 경협차관을 제공하면서 인적 교류를 조건으로 달아 3만5000명의 동독인을 합법적으로 서독으로 이주시켰다. 다만 이 문제는 북한의 체면을 고려해 신중하게 해야 한다. 또 납북자, 국군포로 문제는 북한이 이들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기 때문에 비밀 협상에 의한 송환 쪽으로 노력해야 한다. 과거 동서독 간에도 비밀협상을 통해 정치범을 석방시키고 거래한 선례가 있다.

▲서=이번 이산가족 상봉은 지난 6월 남북정상회담과 앞으로 전개될 남북관계의 연장선상에서 해석되어야 할 문제다. 과연 지금 이런 것들이 전반적인 남북 관계의 개선으로 가는 방향에 기여하는 것이냐, 아니면 오히려 인식의 혼란과 지나친 기대를 조장하는 것이냐 하는 부분은 좀더 두고 봐야 한다. 따라서 이산가족 문제를 정규화, 제도화하기 위해서는 좀더 실용주의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정리=신정록기자 jrshin@chosun.com

/김덕한기자 ducky@chosun.com

전 민족을 3박4일간 격정 속으로 몰아넣은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아쉬움을 남긴 채 18일 끝난다. 중요한 것은 이번에 만난 200가족 뒤에 수백만명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의 교환 방문이 남긴 것과, 이산가족의 고통을 보다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치유하기 위해 앞으로 더욱 보완하고 개선해 나가야 할 방향 등에 대해 송영대(송영대) 전 통일부 차관, 서진영(서진영) 고려대 교수, 이경남(이경남) 이산가족상봉추진회장의 좌담을 마련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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