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서의 이산가족 상봉 마지막 날인 17일에는 ‘정치적 발언’들이 적지 않았다. 북쪽 가족의 앞으로의 ‘안위’를 걱정해서인지, 남쪽에서 올라간 이산가족의 입에서도 어색하게 ‘정치 발언’이 나오는 장면들이 있었다.

○…이선행(81)씨는 북의 아내와 두 아들을 만나고 있는 도중 북한 중앙TV 기자들이 방에 들어오자, 아들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아버지 없이 자식을 이렇게 훌륭하게 키워준 것은 주석님이다. 주석님 만세를 부르고 싶은 심정이다. 김정일(잠시 머뭇거리다가) 위원장은 지금 지도자이지만 너희들을 키워 준 것은 주석님이다. 나는 나대로 남에서 조국에 충성하고 너는 북에서 조국에 충성해라. ”

남에서 온 아버지 이몽섭(75)씨를 만난 북의 딸 도순(55)씨는 TV 카메라가 작동되자 선물 꾸러미를 내밀며 “위대한 장군님께서 준비해 주신 선물입니다”며 발언을 이어갔다. “우리는 장군님의 크나큰 사랑으로 살아왔습니다. 아버님이 장군님 품으로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가 잘못을 했다해도 지나간 과오는 묻지 않겠습니다. ” 딸은 아버지에게 선물 상자를 주며 귀엣말을 했고, 이씨는 못 이긴 듯 “장군님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최성록(79)씨는 딸 영자(53)씨가 “50년 만에 만난 것은 모두 장군님의 덕분입니다”고 하자, “나는 남쪽이니까 김대중 대통령께 감사드린다”고 말하기도 했다.

○…평양을 방문한 100명의 남쪽 이산가족들은 당초 203명(추가 확인된 12명 포함)의 북쪽 가족들을 만나기로 돼 있었으나, 실제로 상봉장에 나온 것은 164명뿐이었다. 39명은 이미 사망했거나 여러 사정상 나오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다.

북한의 오빠를 만나러 평양으로 간 김금자(69·서울)씨가 사촌들로부터 2년 전에 오빠가 사망했다는 말을 15일에야 확인했다는 얘기를 들은 데 이어, 김희조(여·73·부산)씨도 생면부지의 사촌으로부터 만나려했던 동생이 2년 전에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김씨는 사촌에게 자신의 부모와 형제, 조카들 소식을 물었으나, “잘 모른다”는 답변만 들었다. /홍석준기자 udo@chosun.com

/평양=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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