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 대통령이 "김정은은 (내년) 11월에 있을 미국 대통령 선거에 개입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전날에도 "김정은은 내가 다가오는 선거를 치른다는 것을 안다. 그가 그것을 방해하기를 원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벌인 '김정은 쇼' '비핵화 쇼'가 자신의 선거와 직접 연관돼 있다는 사실을 고백한 것이다. 다 아는 얘기지만 미국 대통령 입에서 직접 들으니 북핵의 최대 피해자인 한국민 입장에선 기가 막힌다. 2년에 걸친 비핵화 쇼가 자신의 재선을 위한 득표 전략이었다면 한국민 안보는 트럼프에겐 관심사도 아니라는 뜻이다. 트럼프는 북이 한국을 겨냥한 단거리 미사일·방사포를 13번 쏘는데도 "(미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니) 별거 아니다"라고 했다. 이야말로 진심일 것이다.
 

 


선거를 치르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외교와 국내 정치를 완전히 떼어놓을 수는 없다. 하지만 꼬리가 몸통을 흔들 수는 없다. 지금 한·미 정부의 북핵 협상은 꼬리가 몸통을 흔들고 있다. 트럼프는 즉흥적으로 김정은과의 만남을 결정하고 최소한의 준비도 없이 날짜부터 덜컥 발표했다. 미국 프라임타임에 생중계된 회담 후 트럼프는 "북핵 위협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했다. 그러고선 북이 비핵화 조치를 전혀 내놓지 않았는데도 한·미 군사훈련을 중지시켰다. 이후에도 판문점을 넘나드는 이벤트까지 벌였다. 동맹 안위나 비핵화는 뒷전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국내 정치 주판알만 튕겼다.

트럼프에게 정치 쇼 마당을 열어준 것은 문재인 정권이었다. 그 쇼로 한때 지지율 80%를 올리고 지방선거 승리도 거뒀다. 그 성공에 취해 있지도 않은 '김정은 비핵화 의지'를 부풀리며 북한 대변인 노릇도 했다. 그 결과는 어땠나. 북핵 폐기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김정은에겐 임기도 없고 선거도 없다. 김정은은 한·미의 임기제 정권이 선거에 목을 맨다는 사실을 잘 안다. 이를 철저하고 집요하게 이용하고 있다. 김정은은 트럼프는 허풍쟁이이고, 문 정권은 발아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위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린 다음 트럼프에게 '당근'을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 '극적 타협' '김정은 답방' 등 어떤 카드를 흔들지 모른다. 탄핵 위기에 몰린 트럼프는 김정은의 작은 양보를 받아들여 대북 제재를 풀어주면서 '미국민이 안전해졌다'고 선전하고픈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 유혹에 빠지는 순간 북은 핵보유국으로 공인된다. 선거에 목맨 한·미 정부는 김정은 손바닥을 벗어날 수 없다. 그 피해는 오로지 5100만 한국민이 감당해야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2/09/201912090336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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