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군사합의·지소미아 파기 등 현 정권 외교·안보 의문투성이
'미국 멀리 중국 가까이' 전략은 한미동맹 해체로 가는 징검다리
중국과 손잡고 성공한 나라 없어… 인접국 '1인 GDP' 中의 3분의 1
 

지해범 동북아시아연구소장
지해범 동북아시아연구소장
정부 여당의 '중국 편향'이 심해지고 있다. 최근 부산시 여러 곳에 내걸렸던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70주년 경축' 현판은 그 작은 징표다. 중국 공산당의 존재는 수도 서울의 시의회까지 들어왔다. 지난달 말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중국 건국 기념 사진 전시회는 공산당 정권 수립과 경제 발전을 찬양하는 사진 160여 장으로 채워졌다. 6·25 때 이 땅에서 14만명의 젊은 피를 흘린 미국을 위한 경축 행사는 한 번도 연 적이 없는 서울시의회가 국군에게 총을 쏜 중국에는 장소를 내주었다.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중국 관련 경제 포럼에선 '미국에 대항하는 중국의 리더십' '한·중의 새로운 관계 설정' 등이 핵심 주제로 떠올랐다. 이 포럼에는 설훈, 김두관, 정동영 등 범여권 실세 의원들이 참석했다. 학생운동권 출신 여당 정치인들은 이제 '미국을 대체할 중국'과 '새로운 한·중 관계'를 염두에 두는 것 같다. 안민석 의원이 "한국이 북·중과 연대하여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일본 욱일기의 반입을 막자"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이후 취해온 의문투성이의 외교 안보 조치들 역시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고 거기엔 '친중(親中) 전략'이 숨어있다. 환경영향평가를 핑계로 미룬 사드 정식 배치, 안보 역량을 약화시킨 남북 군사 합의, 한·일 간 지소미아(GSOMIA· 군사 정보 보호 협정) 파기, 한·미·일 안보 협력 대신 중국 포함 다자 협력 추구 등은 한미(韓美) 동맹 해체로 가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 이는 모두 중국에 이로운 조치다. 문 정부 외교는 '미국을 멀리하고 중국을 가까이하는(遠美親中)' 전략이다. 그 목적은 북한과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식 연방제 통일을 하는 데 중국의 도움을 받으려는 것이다. 중국과 북한은 한반도에 미군이 있는 한 통일에 협력할 수 없다는 입장이므로, 문 대통령은 통일과 미군 철수를 함께 추진해야 할 수도 있다. 결국 '미국을 버리고 중국과 손잡는' 결단의 순간에 직면해야 한다.
 
한국 좌파 정치권은 '연방제 통일'이야말로 7500만 한민족이 '분단 체제'를 끝내고 강대국 앞에서 떳떳하게 살 수 있는 대전제라고 본다. 이 목표를 위해 '친중 반미(反美)'가 불가피하다고 보는 것 같다. 청와대가 북핵 문제에 작은 돌파구라도 열리면 미국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남북 경협에 총력을 쏟을 태세인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 성과를 동력으로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여 연방제 개헌(改憲)에 다가선다는 계산법이다.

'미국을 버리고 중국과 손잡는 것'이 문 정부가 꿈꾸듯이 남북한 공동 발전과 평화통일로 가는 길일까? 우린 장밋빛 미래 대신 리스크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한국이 한·미·일 삼각 동맹에서 이탈해 북·중·러 삼각 체제에 편입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한국 사회는 엄청난 충격과 혼란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경제가 받을 충격은 1997년 IMF 위기 이상이 될 수 있다. 내년 총선에서 여당의 승리가 예상되면 연방제 통일을 우려한 국제 자본이 한국을 이탈할 것이고 주식과 원화 가치는 폭락할 가능성이 있다. 부자들이 해외로 떠나면 부동산 시장도 위험하다. 한국이 미국 주도의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에서 제외되면 수출길은 급격히 좁아진다. 기업들이 문을 닫으면 실업자는 급증하고 청년들은 갈 곳이 없어진다. 금융기관 파산으로 수십 년 부어왔던 개인연금이 날아갈지도 모른다. 국민연금, 공무원연금도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좌파가 꿈꾸는 것처럼 북한 개발 붐이 일어나기도 전에 한국 경제부터 무너질 수 있다.

또 한미 동맹을 버리고 연방제에 합의한 한국은 장차 북한과 대등하게 한반도의 미래를 설계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자국의 군사력이 도달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누구도 자신의 정치 체제를 강요할 수 있다"는 스탈린의 말처럼, 핵 무력을 가진 김정은 일인 독재 체제는 한국의 정치·경제·사회 전반을 짓누르게 될 것이다. 말이 '평화적 연방제 통일'이지, 북한 주도의 흡수 통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이란 든든한 친구를 버린 한국은 중국 관계에서도 대등하고 공정한 대우를 받으리란 보장이 없다. '수직적 위계'를 중시하는 중국은 한국에 종속과 굴욕을 강요할 것이다.

사회주의 중국과 손잡아서 성공한 나라는 예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 중국과 국경을 접한 14국 중 러시아를 제외하고 중국보다 잘사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 14국의 1인당 GDP 평균은 3064달러에 불과하다〈그래픽 참조〉. 캄보디아와 미얀마 베트남은 마오(毛) 사상 영향으로 내전과 학살에 시달렸다. 중국 일대일로(一帶一路)에 협력한 국가들은 지금 엄청난 빚에 신음 중이다. 북한 대외경제성 관리조차 "미국과 동맹을 맺은 한국은 잘사는데, 중국과 동맹 맺은 우리는 못산다"고 하소연하겠는가. 중국 땅 끝에 위치한 한국이 3만달러 수준에 오른 것은 한미 동맹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미 동맹을 버리고 '중국 줄'에 서는 선택은 지난 70년간 우리가 누려온 자유민주와 풍요의 정치 경제 구조를 근본부터 파괴하는 일이다. 미군이 주둔하는 곳은 자유민주 정치가 가능하지만, 중국 인민해방군의 힘이 미치는 곳엔 감시와 억압이 있을 뿐이다. 지금의 위구르 지역과 홍콩을 보라. 중국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한국 경제에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미 동맹 위에서나 가능하다. 미국은 한국의 '친구'지만, 중국은 '친구'가 될 수 없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0/09/20191009000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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