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뉴욕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은 발표된 내용만 봐서는 무엇을 위한 회담이었나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당초 예정했던 시간을 훌쩍 넘겨 65분 동안 두 정상이 머리를 맞댔다는데 "북한 대화 재개 의지를 긍정 평가하고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합의정신이 유효하다는 점을 재확인했다"는 설명밖에 없다. 하나마나 한 얘기다. 이번 회담을 앞두고 트럼프 미 대통령은 "(미·북 협상에서) 새로운 방법이 좋을 수 있다"고 언급했었다. 이 말은 고철 수준인 영변 핵시설 폐기를 대가로 대북 제재를 해제해 달라는 북한 요구를 받아들이겠다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 그 여부가 한·미 정상회담에서 가려질 것이라고 예측됐었다. 그런데 '새로운 방법'에 대한 얘기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

이번 회담의 의미가 있다면 걱정과는 달리 회담에서 "제재가 유지돼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는 것이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문제도 논의되지 않았다고 한다. 김정은과 어떤 협상을 하더라도 대북 제재만은 유지돼야 한다. 이번만은 북의 비핵화 사기극에 넘어갈 수 없다.

이번 회담의 또 다른 관심사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었다. 한국 정부의 파기에 대해 미국 정부는 한·미·일 공조체제를 허물었다며 강한 불만을 표시했었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말을 할지 주목됐는데 그에 대한 언급도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국민이 궁금해했던 모든 현안에 대해 정상들이 회담에서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공식 발표만 보면 회담을 왜 했는지 모를 지경이다. 그런데 한·미 회담 직후 열린 국회 정보위에서 국정원이 갑자기 '김정은 11월 방남(訪南) 가능성'을 밝혔다. "오는 11월 김 위원장이 부산에서 열리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국정원이 "비핵화 협상 진행이 어떻게 되는지에 따라 부산에 오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질문에 대한 원칙론적인 답변으로 볼 수도 있지만 국정원이 김정은 동향에 대한 예측을 별생각 없이 했을 수는 없다. 실제 11월에 올 가능성이 높다면 경호 문제 등으로 극비에 속하는 사항일 것이다. 그런 문제를 불쑥 꺼낸 것은 납득하기 힘든 점이 있다.

지금 정권은 총선을 앞두고 조국 수렁에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다. 조국 뉴스가 빨리 사라지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미 정상회담마저 맹탕으로 끝나자 김정은 화제라도 만들어 보려 한 건가. 이런 상황을 보면 이 정권은 내년 총선 전에 김정은 답방을 성사시키거나 최소한 남북 정상회담이라도 열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할 것 같다. 이것이 '조국'보다 더 큰일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9/24/201909240331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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