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버드대학 옌칭연구소의 장학금을 받은 30대 중반의 조교수인 내가 일본 도쿄대학 동양문화연구소장 이즈미 세이치(천정일) 교수의 초청으로 ‘한국 근대문학에 끼친 일본의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도일(도일)한 것은 1970년이었다.

이인직(이인직)을 비롯, 춘원(춘원), 육당(육당), 김동인(김동인), 염상섭(렴상섭), 임화(림화), 정지용(정지용) 등 이 나라 근대문학의 주춧돌을 놓은 문인들의 행적과 그들의 고뇌를 알아보는 일이 내겐 모종의 강박관념이었던 것으로 회고된다. ‘네 칼로 너를 치리라’(춘원)라는 명제, ‘예술, 학문, 움직일 수 없는 진리/그의 꿈꾸는 사상이 높다랗게 굽이치는 동경(동경)’이기에, 거기서 모든 것을 배워 ‘홰보다 밝게 타는 별’이 되리라(임화)라는 외침이 앞 뒤를 가려 나를 그 쪽으로 내몰았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란, 글자 그대로 한갓 관념이었고 마주친 현실은 실로 아득했다. 그 당시의 시대적 숨결을 복원할 만한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작가 미시마 유키오(삼도유기부)가 자위대 군복 차림으로 할복 자살하는가 하면, 강의실 복도마다 대자보가 즐비했고, 책방마다 마르크스 및 그 주의자들의 저술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더욱 나를 혼란케 한 것은 동양문화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는 상당수의 북한 자료였다. ‘용과 용의 대격전’(단재 신채호)이 있는가 하면, 리얼리즘 논쟁집도 있었고, 민중서사시의 시인 김려의 위치가 김만중 만한 비중으로 다루어져 있었다. 춘원은 그렇다 치더라도 염상섭이나 만해 등의 흔적도 거기엔 없었다. 위기였다고나 할까,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내게 출구를 가르쳐준 사람이 헝가리 비평가 G. 루카치(1885∼1971)였다. 도쿄대학 교문 밖에 즐비한 서점을 헤매던 어느 날 내 눈에 띈 것이 루카치의 ‘문학사회학’(1970, 제4판)이었다. 말로만 듣던 ‘소설의 이론’(1916)이 그 속에 실려 있지 않겠는가. 놀랍게도 이 책은 ‘존재와 시간’(하이데거)처럼 이론서가 아니라 ‘작품’이었다. “우리가 갈 수 있고, 또 가야만 할 길을 하늘의 별이 지도의 몫을 해주는 시대는 복되도다”라는 첫 줄이 비석처럼 놓여 이를 증거하고 있었다.

그런 시대를 두고 황금시대라 한다는 것, 서사시의 세계가 이에 대응된다는 것, 이 황금시대가 사라진 시대가 근대라는 것, 이에 대응되는 것이 소설이라는 것. 곧 서사시에 ‘시간성’이 침입, 그 본질적인 것을 망가뜨린 것이 소설이라는 것. 시민 사회가 창출해 낸 최대의 예술형식이 소설이라는 것. 그러니까 소설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라는 것. 요컨대 소설이란 그냥 예술의 한 형식이 아니라, 인류사의 진행 과정상의 과제라는 것이었다.

인류사, 이것만큼 가슴벅찬 말이 따로 있겠는가. 우리 것, 우리 민족, 우리 문학 따위의 지평(배제의 원리, 이른바 왕따 사상)에 사로잡힌 내게 인류사라는 새로운 지평이 거기 숨쉬고 있는 것처럼 보여 마지 않았다. 한국 근대문학이란 무엇이뇨. 논리적이든 심정적이든 그것은 개별 민족문학의 일종이다. 인류사의 빛 아래 놓일 때 비로소 그 본질이 드러난다는 것, 이 점을 루카치는 내게 가르쳐주었다.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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