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남북 이산가족 재회를 논의하는 적십자회담에 참석했을 때 나는 북한대표에게 이렇게 말했다. “3초면 끝날 수 있는 회담인데 15년이나 끌면서 왜 이렇게 괴롭힙니까? ‘만나게 합시다’ ‘그럽시다’ 하면 끝나는 회담이 아닙니까? 연로하신 분들이 모두 세상을 떠납니다. 이 문제만은 정치를 초월합시다. ” 그때 북측 대표는 대답을 못했다.

세월이 다시 15년 흘렀다. 노부모를 모시겠다고 동생들을 고향에 두고 오신 나의 아버님도 한을 안으신 채 세상을 뜨셨고, 수술을 받아 운신 못하는 오빠를 리어카에 실어 흥남부두에 모시고 나왔다가 배에 태울 수 없어 눈 오는 부두에 남겨놓고 오신 후 하루도 잊지 못하시던 어머님도 그 한을 풀지 못하시고 세상을 떠나셨다. 이렇게 한 맺힌 사람들이 수백만인데 그 한을 어쩌자고 북한 당국은 그렇게 고집을 부렸는가. 통탄할 일이다.

그제와 어제 이틀 동안 남북 당국이 100명씩 선정한 이산가족들이 서울과 평양에서 극적인 가족상봉을 했다. 애절했던 사연이 쏟아져나올 때마다 온 민족이 울었다. 그리고 분노했다. 누가 이 죄 없는 백성들에게 이런 깊은 아픔을 주었는가를 생각할 때 슬픔은 분노로 폭발한다.

백성들은 정에 약하다. 더구나 반세기 동안 떨어져 있던 가족의 재회라는 이 인간 드라마에 어떤 무쇠심장을 가진 사람인들 눈물을 쏟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정부에서는 국민들을 들뜨게 하지 말고 차분히 문제의 본질적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700만이 넘는다는 이산가족들을 생각할 때 1회성의 ‘이벤트’ 같은 재회행사보다도 생사확인, 면회소 설치, 서신 왕래 등 근본적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 그리고 이산가족 재회라는 가장 인도주의적인 문제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북한 당국에 대해 강력하게 제동을 걸어야 한다. 수많은 이산가족 중에서 월북한 공산주의자만을 선정하여 내려보내고, 대한민국을 배신하고 북에 가서 한국을 비방해온 사람을 일부러 방문단장으로 내려보낸다든지 하는 북한 당국의 행위에 할 말을 해야 한다.

이산가족 모두가 다 같은 사정이겠지만, 그래도 모두 만날 때까지는 우선 서열이 있어야 한다. 납북어부와 국군포로 같은 분들에게 재회의 1차적 우선권을 주어야 한다. 북에서 하자는 대로만 끌려다닐 게 아니라 우리도 할 말은 당당하게 해야 한다. 남북관계는 이산가족 재회 이벤트로 다 풀리는 것이 아니다. 이벤트에 묻혀 근본관계를 잊는 일은 없어야 한다. 감상적인 행사만으로 남북한 분단의 뿌리를 덮어서는 안 된다. 55년간의 이산의 아픔이 왜 생겨났는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 흔히 정치 지도자들은 과거를 잊고 미래를 내다보자고 한다. 그러나 과거를 정리하지 않고는 바른 미래를 펴나갈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잘못을 인정시키고 사과시킨 후 용서하는 순서를 밟아야 과거는 제대로 청산되는 법이다.

감격스러운 이산가족 재회를 지켜보면서 착잡해진 감회를 세 가지로 요약해 본다.

첫째로, 정부는 대북정책에서 이산가족문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시간에 가장 쫓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을 품고 세상 떠나는 분들을 보노라면 안타까운 마음에 발을 구르게 된다. 이산가족 상봉에 관한 한 우리 사회의 그 누가 반대하겠는가? 일치된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이 문제만은 정부가 과감히 밀고 나가야 한다고 본다.

둘째로, 그러나 이산가족을 볼모로 하여 북한이 우리에게 본질적 사항에 대하여 무리한 양보를 요구할 때는 단호히 이를 거부해야 한다. 아무리 다급한 이산가족 상봉이라 할지라도 국가대사를 놓고 본말을 전도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이 우리 사회 내부문제에까지 깊숙이 간여하려 하는 일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하여야 한다.

덧붙여 한마디. 이산가족 상봉은 무슨 축제 같은 행사가 아니다. 언론이 앞장서서 아픈 가슴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한을 증폭시키는 일은 좀 삼갔으면 하는 것이 이산의 아픔을 안고 사는 사람의 바람이란 것도 잊지 말기를 당부한다.

/ 이 상 우 서강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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