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15일 "미·북 간의 구체적인 협상 진전을 위해서는 사전에 실무협상이 먼저 열릴 필요가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실무자 준비 접촉을 거쳐 정상회담을 갖는 전통적인 보텀 업(bottom-up) 방식 대신 정상 간 합의로 먼저 돌파구를 연 뒤 실무자들이 구체적인 방안을 뒷받침하는 톱 다운(top-down) 방식으로 북핵 폐기를 이뤄야 한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북핵 문제를 잘 아는 미국 실무자들을 건너뛰고 정치적 업적에 목말라 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담판으로 제재 완화를 얻어내려는 김정은과 한편에 섰던 것이다. 그랬던 문 대통령이 '선(先) 실무협상 후(後) 정상회담' 방식이 '하노이 회담'의 실패를 피할 수 있다며 입장을 바꿨다. 문 대통령은 하루 전에도 "북한이 완전한 핵 폐기 의지를 실질적으로 보여줘야 한다"면서, 국제사회에서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대변해 왔던 종전과 다른 자세를 보였다. 미국에선 곧장 "문 대통령의 유럽 메시지가 한·미 동맹에 좋은 신호가 될 것"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문 대통령이 북한 편에서 동맹 편으로 돌아왔다는 환영이다.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6월 말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에 앞서 한국을 방문한다. 판문점에서 북한과 접촉을 시도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문 대통령이 "실무협상이 먼저 열려야 한다"고 한 것은 비건 대표와의 실무 협상에 응하라는 대북 촉구 메시지나 다름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들어 "(김정은과 회담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은 북한이 진짜 핵을 버릴 준비가 됐는지를 먼저 확인하겠다는 뜻이다. 김정은이 트럼프를 속여 넘겨 핵 보유와 제재 해제를 동시에 이루겠다는 꿈은 버리는 것이 좋다. 또다시 사전 핵 폐기 구체적 합의 없이 트럼프 대통령과 만났다가 하노이 때처럼 노딜로 끝나면 미·북 협상 구도 자체가 완전히 허물어질 위험성이 높다. 김정은이 정말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풀고 북을 정상국가로 복귀시키고 싶다면 핵 폐기 실무협상에 응해 핵 리스트를 제출하고 검증받아야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6/16/201906160218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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