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세월이, 50년 세월이 원망스럽구나. 어머님은 아들이 이렇게 살아돌아왔는데 왜 그리도 일찍 돌아가셨더란 말이냐. ”

북한 미술계에서 조선화 거장으로 불리는 만수대창작사 인민예술가 정창모(68)씨.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가 격찬했던 북한 최고의 ‘인민예술가’인 정씨도 두 여동생 춘희(61·경기도 군포시) 남희(53·전주시 효자동)씨를 보는 순간 펑펑 눈물을 쏟았다.

세 오누이는 ‘꿈같은 현실’이 믿어지지 않는 듯, 두 손으로 서로의 얼굴을 맞잡고 쓰다듬었다. 정씨는 “춘희야, 남희야”라며 동생들의 이름만 되뇔 뿐, 말을 잇지 못했다. 춘희·남희 자매도 “오빠, 내 얼굴 기억나”라며 정씨의 얼굴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남희씨는 오빠의 손을 꼭 잡고 “10년전 아는 사람이 미국에 갔다가 ‘평양’이란 잡지를 갖고 왔는데 그 책에서 오빠가 가족에 대해 쓴 기사를 보고 살아계신 것을 알았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정씨는 두 여동생으로부터 “오빠에 대한 그리움에 병을 얻은 어머니가 26년전에, 아버지는 15년전에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듣고는 한동을 말을 하지 못했다.

그리곤 춘희씨가 ‘어머니가 남긴 유품’이라며 문갑과 화분을 건네자, “어머니, 아버지”하며 목놓아 울었다.

6·25전쟁 당시 전주북중 5학년(19세)으로 의용군에 입대, 월북한 정씨는 인물화, 풍경화, 정물화 등 조선화의 각 장르에 걸쳐 북한내 최고 미술가로 평가되고 있으며, 서울과 광주에서 다섯 차례나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지난 76년 김일성 주석의 집무실인 금수산의사당(현 금수산기념궁전)에 비치된 ‘비봉폭포의 가을’을 완성, 김 주석과 김정일 노동당총비서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장일현기자 ihja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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