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아지는 野黨의 청와대 앞 시위… 중요한 정치적 쟁점마다 靑 직접 나서고 공격한 탓
과거엔 여당 대변인이 중심, 지금은 靑 대변인이 전면 나서… 대통령, 야당과 대화 정치 가동해야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자유한국당이 청와대 앞에서 '긴급 의원총회'를 열었다. 지난주 화요일의 일이다. 인사청문회에서 야당이 문제 제기를 한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최근 들어 자유한국당이 청와대 앞을 자주 찾는다는 점이다. 지난 1월 31일에도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김경수 경남도지사 구속과 관련하여 댓글 조작 사건에 대한 문 대통령의 해명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시위를 했다. 이 외에도 개별 의원이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한 적도 여러 차례 있었고 거기에는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도 포함되어 있다. 국회의원들이 국회라는 정치적 논의의 공간을 두고 굳이 청와대 앞까지 와서 집단으로 시위하는 걸 두고 잘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자유한국당의 청와대 앞 '의원총회'를 두고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자유한국당이 일해야 할 곳은 국회의사당'이라고 비판했다.

1990년대 여 박희태, 야 박상천 대변인 설전, 정치의 격조와 매력 느끼게 해

대통령이 우리 정치의 중심이라는 건 당연한 사실이지만 야당 의원들이 청와대 앞까지 찾아가서 시위를 하는 건 과거에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왜 야당 의원들은 국회를 두고 굳이 청와대 앞까지 가서 시위를 할까? 이러한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는 한 가지 열쇠가 최근 발생한 청와대 대변인의 사임이다. 공직자가 누구든 잘못을 저지르면 정치적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고 또 그로 인해 사임할 수 있는 것이지만, 청와대 대변인이 정치적 갈등의 중심에 놓인 건 그간의 우리 정치 경험에서 볼 때 매우 예외적인 일이다. 과거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이 참석한 회의에서의 주요 내용이나 대통령의 뜻과 의견을 공식적인 성명의 형태로 전달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말하자면 청와대 대변인은 정무적인 역할을 담당하기보다 의례적이고 기능적인 역할을 맡아왔다. 이에 비해 정치적으로 보다 예민하고 정파적일 수 있는 사안은 여당 대변인 몫이었다. 야당의 문제 제기와 비판이 대통령을 직접 향하더라도 그것을 막아내고 변호하는 역할은 여당 대변인이 담당해 왔다. 그리고 여야 대변인 간의 설전은 1990년 3당 합당 이후 여당의 박희태 대변인과 야당의 박상천 대변인의 경우처럼 갈등과 대립이 고조된 상황에서도 정치의 격조와 매력을 느끼게 해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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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자유한국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김연철 통일부 장관과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임명 등에 반대하며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지난해 12월 11일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가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벌이는 모습. /남강호 기자·연합뉴스
文 정부 들어선 청와대 직접 나서, 방식도 직접적이고 공격적

그런데 문재인 정부에 와서는 여당 대변인이 잘 보이지 않는다. 중요한 정치적 쟁점에 대해서 청와대가 직접 나설 뿐만 아니라 그 대응 방식도 매우 직접적이고 공격적이다. 여당 대변인의 존재감이 없다는 것은 '집권당'이라는 더불어민주당이 국정 운영 과정에서 별 역할이 없으며 기껏해야 청와대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정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이다. 보다 심각한 사실은 여당을 제치고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야당의 공세에 대응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청와대, 결국은 대통령이 직접 정쟁의 중심에 놓여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야당이 청와대 앞까지 찾아간 건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선거를 통해 권력을 갖는 정치 시스템 속에서 대통령의 정파성은 근본적으로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당선 이후 대통령은 특정 정파의 지도자가 아니라 국가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해 주기를 국민들은 기대한다. 청와대가 해야 할 정치, 대통령이 해야 할 정치는 직접 정쟁에 뛰어들어 대립을 격화시키는 정치가 아니라 그것을 풀어야 하는 정치라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야당 의원들이 청와대 앞까지 찾아오기 전에 문 대통령이 먼저 그들을 청와대로 부를 수는 없었을까. 현실적으로 여소야대의 상황이지만 야당 대표를 만나 쟁점을 풀어내려는 문 대통령의 진지한 자세는 잘 보이지 않는다. 오랜 의회 생활을 한 김영삼 대통령은 열 번, 김대중 대통령은 여덟 번 야당 대표를 만났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은 두 번, 이명박 대통령은 세 번, 박근혜 대통령은 여덟 번 야당 대표를 만났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에서 보듯이 자주 만난다고 해서 정치적 갈등이 쉽게 해소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중요한 건 야당 대표를 직접 만나서 견해의 차이를 줄여보겠다는 대통령의 의지와 정치력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금의 야당 지도부보다 훨씬 강력했던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와 만나 당시 정치적 갈등의 핵이었던 의약분업을 둘러싼 의료 대란의 난제를 해결해 냈다. 또한 노무현 대통령은 2005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의 만남에서 대연정을 제안했다. 야당이 거부해 무산되기는 했지만 이는 여소야대 정국과 갈등의 정치를 풀어보려는 노무현식의 갈등 해소 시도였다. 문 대통령은 지금까지 세 차례 야당 대표들을 만났다. 문 대통령이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이미 일곱 차례 만났고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도 세 차례 만난 것을 고려하면, 훨씬 가까이 있는 야당 대표들과 그리 자주 만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동안의 회담 성격도 문제 해결보다 의례적인 특성이 강했다.

취임사서 말한 만큼만 야당과 대화하라

청와대가 직접 나서 정쟁에 뛰어드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여당의 몫은 여당에 맡겨두고 대통령은 국가 지도자로서 갈등과 대립을 조정해 내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 대북 문제를 논의할 때 문 대통령이 선호하는 최고 지도자 간 '톱다운 방식'의 해결책은 국내 정치의 난제를 해결할 때도 마찬가지로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대통령이 나서 직접 대화하겠습니다. 야당은 국정 운영의 동반자입니다.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만큼만 하면 될 일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4/14/20190414019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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