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의준 워싱턴 특파원
조의준 워싱턴 특파원

지난 2월 말 스페인 주재 북한 대사관을 습격하고 3·1절을 기해 '북한 임시정부'를 선언한 '자유조선'은 반북(反北) 단체이지만 반한(反韓) 단체라고도 할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은 분명히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를 영토로 규정하고 있다. 자유조선은 스스로를 북한의 임시정부라고 선언함으로써 대한민국 헌법에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워싱턴의 한 북한 인권 단체 관계자는 "북한 인권 운동을 하다 보면 마치 내가 1945년 이후 해방 정국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며 "우리끼리는 '미국놈 믿지 말고, 한국놈에 속지 말자'는 말을 한다"고 했다. 해방 정국 격동기에 찬탁·반탁 진영이 충돌하던 당시 "미국놈 믿지 말고, 소련놈에 속지 말라"는 유행어에서 따온 것이다.

이는 1990년대 이후 열정적으로 일했던 북한 인권 활동가들이 미국과 한국 정부에 잇따라 '배신'을 당하면서 생긴 정서다. 2000년대 초 미국에선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북한 인권 문제에 각성 운동이 일어났다. '자유조선'의 리더격인 에이드리언 홍(한국명 홍으뜸)을 비롯해 많은 젊은이가 북한 인권 운동에 투신했다. 그러나 2006년 공화당이 중간선거에서 패배하자 당시 조지 W 부시 정권은 2007년 6월 크리스토퍼 힐 당시 국무부 차관보를 전격적으로 평양에 보냈다. 이후 2008년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해제와 본격적인 미·북 협상이 이어지면서 북한 인권 운동은 상당 부분 동력을 상실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탈북자 지성호씨를 지난 2018년 연두교서에 초대하는 등 파격적으로 북한 인권 운동을 지원하는 듯했지만, 1차 미·북 정상회담 후 "김정은과 사랑에 빠졌다"고 선언한 뒤로 북한 인권의 '인'자도 꺼내지 않고 있다.

미국의 북한 인권 단체 관계자들은 한국 정부에 대해선 기대조차 없다. 최근 미국과 한국의 북한 인권 단체들이 스위스 제네바 유엔 대표부에서 일주일간 북한 인권과 납북자 문제를 고발하는 행사를 열었을 때도 일본 정부 관계자보다 한국 정부 관계자들의 참여가 적었다고 한다. 북한 인권 단체의 또 다른 관계자는 "한국 정부는 북한 인권에 대해 일본은 물론 유럽의 소국(小國)들보다 관심이 없다"며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는 조금 낫긴 했지만 북한의 눈치를 살피긴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이것이 자유조선이 대한민국의 한반도 정통성을 부정하고 임시정부를 선언해도 사람들이 환호하는 이유다. 자유조선은 '반북 단체'가 '반한 단체'일 수도 있다는 점을 처음으로 보여줬다. 에이드리언 홍은 지난 2016년 한 신문 기고에서 "북한 자유화를 위해 분단을 유지하라"고까지 했다. 자유조선의 등장은 어쩌면 훗날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정통성을 잃는 분기점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4/10/201904100388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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