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성 정치부 기자
김명성 정치부 기자

"북한 인권 상황을 알리는 일에 정부가 이 정도로 눈치를 줄지 몰랐습니다. 김씨 정권의 폭정을 피해 사선을 넘어온 탈북자들은 이제 어디에 의지해야 하나요."

이달 말 미국에서 열리는 '북한자유주간' 행사에 참가하는 국내 북한 인권 단체들은 최근 우여곡절 끝에 미국행 항공료 2700만원을 마련했다. 매년 4월 말 서울과 워싱턴을 오가며 열리는 이 행사에 비용을 지원해오던 통일부가 지난달 갑자기 '지원 불가'로 태도를 바꾸자 부랴부랴 유튜브 등을 통해 모금에 나섰다. 북한 인권운동의 대부(代父) 격인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에게 '행사 무산' 위기를 넘긴 소감을 묻자 "한숨은 돌렸다"면서도 정부에 대한 섭섭함을 숨기지 않았다.

현 정부의 북한 인권 정책에 섭섭해하는 탈북민은 김 대표뿐만이 아니다. 노골적인 대북 유화 정책 기조 속에 북한이 불편해하는 탈북민들은 '찬밥 신세'로 전락했다. 탈북단체에 대한 통일부의 '탈북민 정착 사업비' 지급액은 반 토막이 났고, 국정원·경찰 예산으로 지원금을 받던 탈북자 단체들도 지원이 끊겼다. 기업 후원도 사라졌다. 한 탈북단체장은 "우리 단체를 후원했던 기업들이 수사를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자금난에 허덕이는 상당수 탈북단체가 대리운전 등으로 '투잡'을 뛰고, 사무실 규모를 줄이거나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는 실정이다.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지원을 끊어 단체들의 숨통을 죄는 것을 두고 "지난 정부의 '블랙리스트 농단'과 다를 게 뭐냐"는 얘기도 나온다. 교묘하게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것이다. 국제사회도 우려하고 있다. 미 국무부는 지난달 발표한 인권보고서에서 "한국 정부가 북한과 대화에 나서면서 탈북단체들은 '정부로부터 북한에 대한 비난을 줄이라는 압력을 직·간접적으로 받고 있다'고 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통일부 장관 교체를 지켜보는 탈북민들의 심정은 착잡하고 불안하다. 신임 김연철 장관은 그동안 북한 인권 이슈에 대해 '무관심'에 가까운 태도를 보여왔다. 과거 통일부 북한인권증진 자문위원으로 1년 5개월 활동하며 회의엔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탈북민들 사이에선 통일부가 북한자유주간 항공료 지원 결정을 2개월간 미루다 김연철 장관 내정(3월 8일) 직후 '지원 불가'를 통보한 것도 우연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이미 '자포자기' 상태인 탈북민들의 바람은 그리 대단치 않다. 허광일 북한민주화위원장은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길 바랄 뿐"이라며 "김정은에게 아부·굴종하는 장관이 아니라 2500만 북한 주민의 인권에 관심을 갖는 장관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북한과 대화·협력을 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사람이 먼저'라면서 2500만 북한 주민을 외면하진 말자는 얘기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4/09/201904090329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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