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퇴임한 조명균 전 통일부 장관은 이임식 없이 직원들에게 보내는 자책 편지 한 장만 남기고 떠났다. 자신의 퇴진과 후임 인선에 대해 편치 않은 마음이 느껴진다. 조 전 장관은 지난 1월 국회에서 "북한이 주장하는 비핵화와 우리가 목표로 하는 비핵화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김일성 이후 3대에 걸쳐 '조선반도 비핵화'를 주장하면서 뒤로는 모든 것을 희생해가며 핵폭탄을 개발했다. 이들이 말하는 '비핵화'는 핵 보유라는 전략 목표 달성을 위한 정치 선전 구호다. 앞으로도 자신들이 필요한 대로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할 것이다. 이것이 북핵 폐기를 뜻하는 우리의 비핵화 개념과는 도저히 같을 수 없다.

조 전 장관이 이처럼 당연한 말을 한 것이 정권에 밉보인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한다. 김정은이 약속한 비핵화는 한·미가 요구해온 비핵화와 일치한다는 대통령 말을 뒤집는 격이기 때문이다. 조 전 장관은 작년 11월 방미 때 "한국 정부가 독자적으로 북한과 경제 협력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제재 위반에 걸리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했는데 이 역시 정권의 심기를 건드렸다. 북핵 협상과 상관없이 남북 쇼를 계속해 그것을 정권 연장 수단으로 삼으려는 청와대의 뜻을 거슬렀기 때문이다.

신임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취임사에서 "안 되는 이유를 찾는 것은 쉽다. 현실적인 제약 속에서도 실현 가능한 방안을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했다. 대북 제재를 교묘하게 피해서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재개 방안을 찾아내라는 것이다. "김연철이 장관 되면 미국도 어쩌지 못할 것"이라던 발탁 이유가 짐작이 된다.

개성공단 연락사무소에서 남측만 사용한 석유도 유엔이 문제 삼을 정도로 대북 제재망은 엄격하다. 이 그물을 피해서 남북 경협을 하려면 마술을 부려야 한다. 제재 위 반에 걸리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바른말을 하면 장관 자리에서 쫓겨나고, 정권 뜻에 맞춰 우리 기업, 금융기관을 사지로 내몰겠다고 만용을 부리면 장관이 된다. 이런 정권 분위기를 잘 아는 외교장관은 "남·북·미의 비핵화 개념은 차이가 없다"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국방장관은 자리 보전을 위해 북한의 도발을 도발이라고 부르지도 못하고 말을 흐리기 바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4/09/201904090327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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