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준용 정치부 기자
안준용 정치부 기자

하노이 2차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된 지 3주가 지났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다. 결렬 당일인 지난달 28일 오전 청와대가 남북 경협을 염두에 둔 듯한 국가안보실 1·2차장 교체를 발표하고, 오후에 김의겸 대변인이 "남북 대화가 다시 본격화할 것"이라며 긍정적 전망을 내놓던 장면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참모들과 미·북 정상의 합의문 서명식을 시청할 예정이란 사실까지 공개했다. 그러나 김 대변인이 기자실을 떠난 지 10여분 뒤 백악관은 협상 결렬을 공식 발표했다. '청와대가 하노이 회담 결렬 기류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문 대통령에게 미·북 회담 진행 상황을 보고한 인물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다. 강 장관은 지난 1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업무보고에서 하노이 노딜(no deal)과 관련,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를 들어 (사전에) 알고 있었고, 인지된 시점에서 바로 (청와대에) 보고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구체적으로 인지·보고한 시점에 관해선 "미국과의 관계가 있어 정확히 말씀드릴 수 없다"고 했다. 앞서 김의겸 대변인도 '노딜'을 전망했느냐는 질문에 "모든 가능성을 보고받고 있었다"고만 했다.

보고를 했다는 외교부와 받았다는 청와대가 모두 얼버무리니 회담 결렬 기류가 언제 어떤 수준으로 보고됐는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 가능성은 두 가지다. 외교부가 회담 결렬 가능성과 관련해 부실 보고를 올렸거나, 청와대가 외교부의 보고를 무시하고 희망적 사고에 젖어 미·북 회담을 낙관했거나. 둘 다 아니라면 2월 28일 종일 우왕좌왕했던 청와대의 행태는 설명되지 않는다.

최근 우리 국회 관계자를 만난 일본 정부 당국자는 "평양 실무협상 때부터 타결이 어렵다고 들었고, 하노이 첫날 만찬 직후 회담 결렬 가능성이 크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그런데 다음 날 청와대 대변인의 낙관적 발언에 놀랐다"고 했다. 반면 강 장관은 회담 결렬 닷새 뒤에도 미국이 북한에 요구한 '영변 플러스 알파(α)'와 관련해 "내용을 확인해봐야 한다"고 했다.

강 장관은 작년 11월 미·북 고위급 회담 돌연 취소 때도 외교부 기자들보다 상황을 늦게 파악해 논란이 됐다. 이런 장면들은 최근 형해화된 한·미 공조의 단면을 보여준다. 정부는 "한·미가 긴밀히 공조하고 있다"고 하지만 미국은 최근 한국의 대북 제재 면제 ·완화 주장, 북한 인권 문제 방조를 잇달아 지적했다. 청와대는 미국의 비핵화 협상 원칙인 '일괄타결식 빅딜'을 부정하는 듯한 '굿 이너프 딜(충분히 괜찮은 거래)'이란 정체불명의 개념까지 들고 나왔다. 진실을 감추고 상황을 모면하려 말장난과 잔재주를 앞세우다 보면 신뢰를 잃는다. 미·북의 '중재자' '촉진자'는커녕 '구경꾼' '외톨이'로 전락할 수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20/201903200404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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