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비핵화 수단이던 남북 관계, 어느새 지상 목표가 돼 버려
북에 우린 우군도 심판도 아냐… 동맹파괴·국제불신 자초 말아야
 

배성규 정치부장
배성규 정치부장

최근 사석에서 만난 안보 부처 관계자는 "지금 정부의 시선은 온통 북한에 쏠려 있다"고 했다. 비핵화(非核化) 문제뿐 아니라 외교 안보의 축이 북한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정부 관계자도 "북한을 달래기 위한 지원책을 마련하느라 애쓰고 있다"고 했다.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을 재개하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목소리는 아예 내기 힘든 분위기다.

올해 초 "북한의 조선반도 비핵화는 우리 목표인 북 비핵화와 다르다"고 했던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이번에 '골수 햇볕론자'인 김연철 후보자로 교체됐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도 대북 800만달러 인도적 지원 방안에 이의를 제기했다가 호된 내부 비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정인 안보특보는 "김 후보자 발탁은 미국과 관계없이 한반도 정세를 밀고 나가려는 뜻"이라고 했다. 경제가 어렵자 문 대통령이 평화 이니셔티브에 베팅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여권 관계자는 "누구보다 문 대통령의 소신이 확고하다"고 했다. 북 비핵화 유도를 위한 수단이었던 남북 관계가 오히려 지상 목표가 돼 버린 것이다.

하지만 북한과 가까워진다고 북이 핵 포기에 나설 거라는 건 정부의 일방적 기대일 뿐이다. 더구나 경제 위기를 대북 관계로 돌파하려는 건 안보 위기를 부를 정략적 발상이다. 미국의 제재 강화 방침과도 어긋난다. 외교가에선 "문 정부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워싱턴포스트는 "문 대통령의 신뢰성이 위태롭다"고 했다. 최근 한·미 당국 간 협의도 제대로 된 정보 공유 없이 겉돌았다고 한다. 유엔도 정부가 개성 남북연락사무소에 공급한 유류를 문제 삼았다. 일본·중국과의 비핵화 외교는 사실상 실종돼 있다. 정부 내에선 "대북 지원 문제로 언제 사고가 터질지 몰라 조마조마하다"는 걱정이 적잖다. "그동안 남북 협력 기금으로 집행된 '깜깜이 대북 지원 사업'이 상당한데, 한·미 워킹그룹 운영 이후 제동이 걸리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정부의 '중재자론(論)'에 대한 미국의 불신도 크다.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낸 건 좋지만 북한을 편드는 듯한 중재역은 필요 없다는 것이다. 비핵화 문제에서 미국과 한국은 '원 팀(one team)'인데 자꾸 남의 나라 일처럼 심판으로 나서려 하느냐는 불만도 담겨 있다. 북핵이 한·미를 겨누고 있는데 정부가 담판의 당사자임을 잊어버린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북이 협상에 나온 건 국제 제재로 인한 심각한 경제난 때문이다. 우리가 대북 제재의 '뒷문'을 열어줘선 안 될 일이다.

북한은 최근 "미국과 동맹인 남조선은 플레이어(선수)이지 중재자가 아니다"고 했다. 아무리 북을 지원해도 김정은에게 우리는 우군(友軍)도 심판도 아 니다. 남(南)을 이용할 뿐 우리가 바라는 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핵(核)은 '전부(全部) 아니면 전무(全無)'의 싸움이다. 북이 핵을 포기할 거라는 안이한 기대나 '민족·자주'라는 감상론으로 대북 정책을 추진해선 안 된다. 북한만 바라보는 '외눈박이 외교'로는 비핵화 협상을 결코 성공시킬 수 없다. 동맹을 흔들고 국제적 불신만 자초할 뿐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17/201903170179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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