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4일 NSC 전체 회의에서 결렬된 2차 미·북 정상회담의 "매우 중요한 성과"라며 "영변 핵 시설의 영구 폐기가 가시권에 들어왔다"고 했다. "영변 핵 시설이 완전히 폐기된다면 북 비핵화는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든다"고 했다. 황당한 얘기다. 영변 시설은 기본적으로 쓸모없는 플루토늄 시설이고 우라늄 농축 시설은 협상용으로 쓰기 위해 일부러 외부에 공개한 곳이다. 북이 바보가 아니면 이런 곳에서 진짜 핵 생산을 할 리가 없다. 그런데 영변을 폐기한다고 어떻게 북 비핵화가 되돌릴 수 없게 되나. 김정은이 듣고 속으로 웃을 것이다.

회담에서 미국은 영변 외에 최소한 두 곳 이상의 우라늄 농축 시설을 북한이 숨겨두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 시설을 포함한 전체 핵 프로그램 폐기를 약속해야 북한이 원하는 전면적 제재 해제가 가능하다고 했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이 영변 핵 시설을 폐기하면 비핵화가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접어든다고 한 것은 이런 동맹국의 입장을 반박하며 북한 측 제안을 두둔한 것이나 다름없다. 2차 회담 당시 한미는 핵심 정보를 공유하지도 않았다. 회담에 배석했던 볼턴 미국 안보보좌관은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빅딜 문건'을 건넸다"고 했다. 영변 핵 시설을 넘어 모든 핵 무기·물질·시설의 신고와 검증 시간표 등이 망라돼 있다고 한다. 청와대가 이런 '빅딜 문건'을 미리 귀띔받았다면 외교·통일 분야를 총괄하는 국가안보실 2차장에 통상 전문가를 임명하는 '김칫국 마시기' 인사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볼턴이 방한을 갑자기 취소한 것도 청와대에 빅딜 문건 내용을 알려주면 곧바로 북(北)에 전달될 가능성을 우려했을 수 있다. 세상에 이런 관계도 '동맹'이라고 부를 수 있나.

동맹은 어느 한쪽이 공격받았을 때 목숨을 걸고 함께 싸운다는 군사 맹약이다. 그런데 한국과 미국은 키 리졸브, 독수리 훈련 등 3대 한미 연합 훈련을 모두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북한의 비핵화를 믿 을 수 없게 됐다면 중단됐던 훈련까지 재개해야 하는데 정반대로 간다. 미군은 '훈련 없이 실전에 투입할 수 없다'는 분명한 원칙을 갖고 있다. 북한의 오판을 막는 확실한 안전판이었던 한반도 유사시 대규모 미군 증원 약속도 더 이상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핵으로 중무장한 북의 실체적 위협은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데 한미 동맹은 껍데기로 바뀌어가고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04/201903040343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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