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남북경협 먼저 밝혀 북은 이미 선물 받은 셈
'빈손 외교' 압력 의식한 트럼프 뚝심에 기댈 처지
 

강인선 워싱턴 지국장
강인선 워싱턴 지국장

다음 주 열리는 2차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베트남 하노이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정상회담 때는 급반전으로 허탈감을 주는 리얼리티 쇼를 본 것 같았다. 지금은 스릴러 영화를 보기 직전의 기분이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 회견장에서 아무 대가 없이 한·미 연합 군사훈련 일시 중단을 즉흥적으로 결정해버렸듯 이번엔 또 어떤 카드를 던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마이클 모렐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 대행은 "보스니아 내전을 해결한 데이턴 평화협정을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는 "때로 외교적 협상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기도 한다"고 했다. 물론 기대는 한다. 트럼프도, 김정은도 싱가포르 회담 결과 수준을 반복하면서 회담을 이어갈 순 없을 것이다.

요즘 워싱턴 분위기를 요약하면 '크게 기대는 안 하지만 엉뚱한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걱정된다' 정도이다. 작은 진전을 이뤄 대화 분위기를 이어갈 수는 있으리라고 본다. 정상회담이 정례화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하지만 비핵화 진전 없는 미·북 정상회담 지속은 북한을 점점 더 사실상 핵 국가로 인정해주는 꼴이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북한 비핵화를 서두르지 않겠다"고 했다. 회담 전 김정은에게 보내는 메시지이다. 해석하자면 '미국은 북한 비핵화에 시간이 걸려도 급할 게 없지만 제재 때문에 죽을 지경인 북한은 다급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제재를 풀고 싶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북한에서 의미 있는 무언가를 해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며칠 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제재 완화를 해줄 수도 있다고 했던 것과 비슷한 발언이다.

미국의 공식 입장은 여전히 '비핵화 이전에 제재 완화 없다'이다. 하지만 2차 정상회담 핵심 의제는 북한의 완전한 핵 폐기 방안보다는 미국의 제재 완화 여부에 쏠리는 분위기이다. 북한이 끈질기게 제재 완화를 밀어붙인 결과이다. 북한 김영철 통전부장이 지난달 김정은 친서를 들고 워싱턴에 와서 트럼프를 만났을 때 전한 핵심 메시지도 제재 완화였다고 한다.

대북 제재의 역사는 길다. 북한의 첫 핵실험 이후인 2006년 이후로만 잡아도 유엔안보리 제재와 미국 독자 제재가 촘촘하게 얽혀 있다. 유엔 제재는 국제사회가 유엔 결의안에 따라 결정한 것이다. 미국이 결심한다고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미국의 독자 제재 역시 정상회담 한 번으로 걷어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 거론됐던 '느슨한 고리'가 한국 정부가 적극 민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였다. 제재의 일반 원칙을 허물지 않으면서 '제재 면제'라는 방식으로 우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재 원칙에 대한 타격을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미국은 회의적이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트럼프와 통화에서 남북경협 부담을 떠맡을 각오가 돼 있다고 했다.

워싱턴의 한 전문가는 "정상회담을 하기도 전에 한국이 먼저 지원 의사를 밝히는 바람에 미국이 남북경협 제재 면제를 북한 비핵화를 유인할 카드로 쓰기는 어렵게 됐다"고 했다. 북한 입장에선 이미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받아들일 것이기 때 문이다. 제재 완화를 끈덕지게 밀어붙여 남북경협 제재 면제란 선물을 받는 것이 애초에 북한이 2차 정상회담에 거는 단기 목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제아무리 트럼프라도 '빈손' 외교에 대한 민주당과 전문가들의 비판은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북한이 말로 약속만 하고 제재 완화라는 복권에 당첨되는 걸 막는 건 의외로 트럼프가 받고 있는 국내 정치 압력일 수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2/21/2019022103242.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