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정상회담 열성적인 반면 실무회담은 의욕 없거나 기피
의제 조율 없이 트럼프 흥분시켜 '핵 보유국' 다가가려는 전략
 

강인선 워싱턴 지국장
강인선 워싱턴 지국장

북한이 2차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실무 협상 담당자를 바꿨다. 최선희 외무성 부상 대신 김혁철 전 주스페인 대사가 등장했다. 김혁철은 김영철 통전부장이 편하게 생각하는 인물이라고 한다.

김영철은 고위급 회담을 하면서 실무회담을 맡은 최선희를 데리고 다닌 경우가 거의 없었다. 김정은이 최선희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카운터파트로 지명한 이후에도 그랬다. 외무성 출신에 대한 불신이 워낙 깊었다고 한다.

하지만 비건-최선희 실무 협상 라인이 제대로 가동돼 보지도 못하고 끝난 더 중요한 이유는 북한이 실무회담 그 자체를 기피하기 때문이다. 2차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곧 가동될 비건-김혁철 협상에서도 북한의 대응이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미·북 협상은 정상·고위급·실무 회담 3단계, 그리고 정보기관 물밑 채널까지 네 겹으로 움직인다. 반복되는 북한의 행동 패턴이 있다. 1단계인 트럼프-김정은 정상회담은 열성적으로 추진하고, 2단계인 폼페이오-김영철 고위급 회담은 마지못해서 한다. 다만 트럼프 면담이란 조건이 충족됐을 때는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고위급 회담은 친서를 교환하는 정상 간 소통 채널이기도 하다.

반면 3단계인 실무회담의 경우 북한은 거의 의욕을 보이지 않거나 애써 피해 왔다.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고위급 회담이 세 차례 열리는 동안 실무회담은 한 번 열렸을 뿐이다. 지난해 8월 비건 대표가 북핵 협상을 전담하면서 수차례 회동을 요청했지만 최선희는 묵묵부답이거나 거의 도망 다니다시피 했다. 최근 스웨덴 회동은 최선희가 실무협상 담당에서 하차한 이후에 이뤄졌다. 북한이 실무회담에 응할 때는 요즘처럼 정상회담 준비가 본격화됐을 때뿐이다.

북한이 실무 협상을 기피하는 이유는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상응 조치를 사전에 논의해 정상회담 의제의 틀을 미리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 실무팀의 최대 목표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본 없이 무대에 오르게 하는 것일 것이다. 충동적이고 기분파인 데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이 현장에서 통 큰 결단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단 두 사람만 마주 앉은 정상회담 무대에서 트럼프를 흥분시켜 제재 완화에 대한 결단을 통째로 얻어내는 것이 김정은에겐 최선의 전략일 수 있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도 그렇게 해서 트럼프로부터 한·미 연합 군사훈련 유예를 얻어내고 주한 미군 철수 의향 속내까지 확인했다. 또 한 번 그런 기회를 만들려면 실무 차원의 준비가 부족할수록 북한에 유리하다.

최근 댄 코츠 국가정보국(DNI) 국장, 지나 해스펠 중앙정보국(CIA) 국장들이 일제히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비롯, 북한 담당 트럼프 행정부 관리 중 김정은의 비핵화 진정성을 믿는다는 사람은 없다. 김정은의 눈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생각이 다른 강경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실무회담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트럼프와 직접 담판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 할 것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다. 2차 미 ·북 정상회담을 앞둔 지금 상황에서 악마는 실무회담에 있다. 실무회담에서 사전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싱가포르 회담의 재판이 될 가능성은 커진다. 더 큰 문제는 설사 그런 결과가 나와도 트럼프-김정은은 회담을 또 하고 싶어 할 것이라는 데 있다. 그러는 사이 북한은 '미국과 정기적 정상회담을 할 정도로 친한, 핵을 가진 국가'에 계속 다가갈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1/31/201901310321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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