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이 일제만큼 배척한 것이 北 정권과 같은 專制다
3·1 정신에 따르면 北 정권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선우정 부국장 겸 사회부장
선우정 부국장 겸 사회부장

청와대가 김정은의 3·1절 서울 답방을 바란다고 한다. 작년 평양 공동선언에선 '3·1운동 100주년을 남북이 함께 기념한다'고 합의했다. 대통령 지론과 달리 100주년 사업 이름에서 '대한민국 건국' 문구를 뺀 것도 북한을 배려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대통령의 평소 스타일로 볼 때 '1948년 건국'을 주장하는 한국 내 목소리를 배려해 건국 문구를 제외했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문제는 지금 북한 정권에 3·1운동을 기념할 자격이 있느냐는 것이다.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3·1운동을 주로 '항일(抗日)'의 의미로 기억한다. 만세 운동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일제의 압제에서 해방하고자 한 투쟁이다. 이 의미만 생각하면 3·1운동은 결과적으로 성공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3·1운동이 일으킨 항일 투쟁은 역사적 의미가 크다. 하지만 세계사에서 한민족 해방의 결정적 사건은 미국의 승전과 일본의 패전이었다. 전후 국제사회의 강화 협정에서 한민족의 항일 투쟁은 연합국 승전의 요인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3·1운동은 성공한 역사다. '독립'의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해방은 벗어나는 것, 독립은 세우는 것이다. 3·1운동의 주역들은 앞으로 독립할 조국을 어떤 나라로 만들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준비했다. 그 결과로서 선언한 나라가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이다. 어떤 이는 자유를 중시했고 어떤 이는 평등을 중시했지만 왕이 아닌 국민이 나라를 지배하고 운영한다는 민주주의 공감대는 해방 때까지 변하지 않았다.

지금은 민주주의가 당연하다. 하지만 100년 전엔 그렇지 않았다. 1899년 대한제국이 헌법처럼 공포한 국제(國制)는 그 시대 한국의 보편적 질서를 전해준다. '대한제국 정치는 만세에 불변할 전제정치.'(2조) '대한국 대황제는 무한한 군권을 향유.'(3조) '군권을 해친 신민(臣民)은 이미 한 것과 아직 하지 않은 것을 막론하고 신민의 도리를 잃은 자로 간주.'(4조) 왕실은 일왕가에 복속될 때까지 이런 무한(無限) 권력을 스스로 내놓은 일이 없다. 민권(民權)을 주장하는 자를 '비(非)신민'으로 끝없이 찍어내면서 왕권을 키웠다. 근대를 거부하고 고대로 회귀했다.

구한말 한국을 '가산(家産)국가'로 보는 학자들이 있다. 국가를 군주의 세습 재산으로 간주하는 국가를 말한다. 영토와 인민은 왕의 사유(私有), 재정은 왕의 사(私)수입이다. 역사상 국력이 가장 약해진 시대에 왕권이 가장 비대해진 것은 시대를 역류해 가산국가의 특징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 정말 '헬조선'이 존재했다면 이때였을 것이다. 이렇게 키운 권력은 어디로 갔을까. 1910년 경술국치 때 공포한 병탄 조약 1조는 이 권력을 '통째로 영원히' 일왕에게 바친다는 내용이다.

이런 과거를 한국사에서 최종 부정한 사건이 3·1운동이다. 조소앙·신채호·김규식·박은식이 1917년 발표한 대동단결 선언은 '황제권이 소멸한 때가 민권이 발생한 때이며 구한국 최후의 날은 신한국 최초의 날'이라고 했다. 이 정신이 3·1운동으로 이어졌다. 고종 독살 소문에 분노한 민중이 주역이었기 때문에 왕정복고가 운동의 정신이라고 하는 것은 배고픈 군중이 주역이었기 때문에 허기가 프랑스혁명의 정신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3·1운동의 주역들은 일제만이 아니라 자신의 구체제 단절을 선언했다. 그 선언이 훗날 현실에서 대한민국으로 구현됐다. 구(舊)한국과 신(新)한국, 중세와 근대의 분기점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3·1운동은 혁명이다.

그 혁명은 한국에서만 성공했다. 북한은 구한말 한국의 부정적 가산국가 요소를 몽땅 계승했다. 민주, 인민, 공화국 글자를 붙인다고 민주주의가 아니다. 영토와 인민은 김씨 일가의 사유, 재정도 김씨 일가의 사수입이다. 여기에 가산국가의 특징 하나가 더 붙었다. '전쟁은 군주의 사사(私事)'라는 것이다. 북한의 군주는 핵(核)까지 들었다. 초기엔 북한 정권에도 평등을 중시하는 민주주의자도 다수 참여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 정권 은 구한말 권력이 그랬듯 민권을 주장하는 자를 '반동'으로 끝없이 찍어내면서 역사상 가장 강력한 권력을 키워 왔다.

3·1 정신이 증오하는 전제 권력과 무엇을 바라보면서 100주년을 기념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3·1 정신에 따르면 북한 정권은 존재 자체가 극복해야 할 미완의 숙제다.

김정은이 한국에 오든 안 오든 상관없다. 단 3·1절에만 오지 마라.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1/29/201901290305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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