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셋째 왔어요. 50년 만에 아들이 왔답니다. 어머니…. ”

15일 오후 4시 코엑스 3층 컨벤션 홀에서 50년 만에 상봉한 북한 중앙방송 작가 조진용(69)씨와 어머니 정선화(94·서울 동대문구)씨는 서로 부둥켜안고 목놓아 울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정씨는 노환으로 가는 귀가 먹어 아들의 이야기를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이제 너를 만났으니 죽어도 한이 없다”고 울먹였다.

진용씨는 “기어이 아들을 봐야겠다는 집념으로 아흔을 넘기신 것 아니겠느냐”며 “환갑, 칠갑, 팔갑, 구갑 잔치 때 못다한 절 다 합쳐서 큰 절을 올립니다”며 바닥에 엎드려 정씨에게 절을 올렸다.

그러나 반세기 만에 아들을 만난 기쁨이 너무 컸던 탓인지 정씨는 4시30분쯤 혈압이 올라 실신 상태에 빠졌다.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응급조치로 정씨를 응급베드에 눕혀 안정을 취하게 했다. 의사는 “병원으로 옮기는 것이 좋겠다”고 했으나 정씨는 “(아들이 있는) 이곳을 떠나지 않겠다”고 우겨 병원으로 이송되지 않았다. 한동안 곤히 잠을 자던 정씨는 6시40분쯤 다시 깨어나 아들과 얘기를 나눴다.

진용씨는 “북한에서 김일성 종합대학을 나와 김일성상 계관인이 됐다”며 어머니에게 김일성상 금메달을 꺼내 보여주기도 했다. 북한 문학계 최대 영예가 김일성상 계관인. 진용씨는 서울대 법대 1학년이던 6·25전쟁 때 의용군으로 참전했다가 월북했었다. 진용씨는 “아내(한흥복·68)는 조선체육대학 영어 부교수로 일하다 지금은 은퇴한 상태이고, 아들은 로동신문 기자, 세 딸은 중학교 미술교사, 화가, 연구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어머니에게 자랑했다.

진용씨는 어머니의 두 손을 꼭 잡고 “어렸을 때 어머니가 저의 종아리를 때리며 공부 열심히 하라신 것 기억이 생생하다”며 “어머니, 우리 어머니 오래 오래 사십시요. 통일이 되면 같이 살아요”라고 말했다.

내일(16일) 다시 만날 때는 시를 지어 어머니께 바치겠다는 진용씨는 “예로부터 자식이 부모를 만나면 옷감을 선물하는 거라고 해 어머니 선물로 치마저고리 옷감을 준비해 왔다”고 말했다.

/김민식기자 callin-u@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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