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확실히 달라졌다…북한 예술단 서울 공연서도 달라진 분위기 느껴져”
“북에 또 속으면 안된다고? 무능한 사람들의 패배주의적 사고”

 
김홍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이 6일 서울 마포구 민화협 사무실에서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남북정상회담 후 진행될 남북민간교류에 대한 생각을 밝히고 있다./윤희훈 기자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인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은 6일 “김정은이 굉장히 실용적인 사고 방식을 갖고 있다”면서 “(김정은의) 그런 사고 방식은 젊고 국제감각 있는 엘리트 그룹의 보좌 때문”이라고 했다.

김홍걸 의장은 2011년 12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때 조문을 위해 이희호 여사와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을 한 차례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지난해 12월 200여 개 정당, 종교, 시민사회단체의 남북 통일 관련 협의체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서울 마포 민화협 사무실에서 가진 본지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고 “북한은 2000년 이후 젊은 엘리트들을 대거 해외로 유학을 보냈다”며 “그때 공부하고 돌아온 세대가 김정은을 보좌하는 것으로 추정한다”고 했다.

김 의장은 김대중 정부 시절 ‘대북 퍼주기’ 논란에 대해선 “북한에 지원한 액수가 다른 정부에 비해 많은 것도 아니다. 정부가 북한에 현금을 준 것은 얼마 안된다”며 “퍼주기는 틀린 표현”이라고 했다. 그는 “앞으로 핵문제가 풀리면 대북 투자에 적극 나서야 하는데 퍼주기 비난에 막혀 중·일 등에 기회를 뺏길까봐 걱정”이라고 했다.

김 의장은 또 남북정상회담 후 과거보다 훨씬 개방적이고 규모가 큰 남북 교류와 경제협력이 진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일단 유엔 대북제재가 풀려야 하겠지만, 북쪽에선 경협의 규모나 수준을 크게 생각하고 있다”며 “대도시엔 첨단산업기지를 세우고, 농촌을 현대화하는 플랜이 있다고 들었다”고 했다.

 
김홍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윤희훈 기자
다음은 김 의장과의 인터뷰 전문.

-5일 진행된 우리 예술단의 평양 공연은 어떻게 봤나?

“북측 예술단의 서울 공연에서부터 북쪽의 달라진 태도와 변화된 상황을 느낄 수 있었다. 어제 공연장의 북한 관객들을 봤을 때 옛날과 달리 굉장히 편하고 개방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북쪽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때 오고 예술단이 방남하고, 또 우리가 갔을 때 맞이하는 북측 관계자들의 태도를 보면 확실히 달라졌다. 과거 강경파로 알려졌던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도 우리에게 친절한 태도로 나오고, 특히 첫 공연날 발생한 취재 문제에 대해서 이례적으로 사과까지 했다. 그것은 결국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밝힌대로 남북관계 개선 의지가 확고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자신이 부하들에게 확실하게 주지시켰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 아닌가.”

-북한이 달라졌다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북한 태도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

“북한에 속지 말아야 한다는 소리를 하는 것 자체가 무능하고 무책임한 사람들이 하는 패배주의적이고 비관주의적인 사고다. 북한이 대화를 하러 나오면서 부드럽게 나오는 것을 두고 위장평화 전술이라고 하는데, 그런 주장을 하는 분들은 북한이 당장 전쟁이라도 일으킬 것처럼 ‘서울 불바다’를 말하고, 미사일을 쏴대는 것이 좋다는 말인가? 결국 북한에게 속을 게 뻔하니 아무 것도 하지 말자는 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북한이 만약 위장평화 공세로 나오더라도 대화를 하면서 자기들이 한 말을 지킬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게 외교이고, 능동적인 전략이다. 북한은 어차피 믿을 수 없으니까 외면하면 된다는 식으로는 한반도 위기상황을 극복할 수 없다. 북한을 맨날 ‘깡패국가’ ‘불량국가’ 식으로 표현하는데 그렇다고 북한을 고립시키고 외면하는 것으로 상황을 개선할 수 없다. 북한을 정상국가로 만들려면 교류하면서 개방하도록 해야 한다. 저 사람들은 원래 저런 사람들이니까 대화하지 말자는 건 너무 무책임하다.”

-김영철이 취재 문제는 사과했지만 천안함은 그냥 넘겼다. 오히려 ‘남측에서 천안함 주범이라고 하는 사람’ 운운하면서 논란을 야기했다.

“그 발언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순 없다. 천안함 관련 발언은 자신은 관련이 없다는 자신감에서 한 말일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을 마치 천안함 유족들이나 우리 국민을 조롱하려고 했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건 옳지 않다고 본다. 나는 김영철 발언을 ‘나는 남쪽과 잘 지내려고 하는데 왜 나를 악마처럼 취급하느냐’는 항변이 섞인 말일 수도 있다고 본다.”

 
3일 오후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남북합동공연 '우리는 하나'에서 남북 예술단이 공연을 마친 뒤 인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과거 김정은을 직접 만난 적이 있다. 김정은 체제가 정말 달라졌다면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나?

“저는 이게 갑작스런 변화라고 보지 않는다. 물론 북한이 핵을 얼마나 쉽게 포기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제가 본 김정은은 굉장히 실용적인 사고 방식을 갖고 있다. 그런 사고 방식은 젊고 국제감각 있는 엘리트 그룹이 보좌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2~3년전부터 중국 소식통을 통해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이 어느정도 완성 단계에 이르기 전까지는 대화에 쉽게 안나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북한은 박근혜 정부와 오바마 행정부를 신뢰하기 힘들고, 자신들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핵이 어느 수준까지 오르지 않으면 자기들을 대화 상대로 제대로 인정을 안할테니, 확실한 흥정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핵 무력 개발이 어느 정도 단계에 들어서면 그때부터 180도 태도를 바꿔서 대화와 협상을 하자고 나올 것이다’고 했다. 들은 이야기 그대로 됐다. 북한은 예전부터 그런 계획을 갖고 있었다. 거기에 마침 올림픽이 있었고, 또 우리 측에서 올림픽 기간 한미군사훈련을 연기하겠다고 치고 나간 게 도움이 됐다. 북쪽도 남측 정부와 한번 대화 해볼만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김정은이 신년사로 화답했다. 갑작스러운 변화는 아니다.”

-문 대통령의 한미군사훈련 연기 의사가 북한을 움직였다?

“문 대통령이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훈련 연기 의사를 밝혔다. 아직 미국과 합의 되진 않았지만 미국도 수긍할 것이란 생각에 먼저 치고 나갔다. 이걸 보고 북측에선 남측 정부도 상당히 적극성을 갖고 있다고 판단하게 됐다.”

-앞서 김정은의 젊은 엘리트 보좌진을 언급했다. 어떤 조직인지 실체를 알고 있는게 있나?

“그 정체는 아무도 모른다. 중국과 일본의 정보통들에게 물어보면 ‘분명히 있는데 정체가 안드러난다’고 한다. 북한은 2000년대 6·15 공동선언 이후 젊은 엘리트들을 대거 해외로 유학을 보낸 적이 있다. 해외 곳곳으로, 미국으로까지 보냈다. 개인적으론 그때 공부하고 돌아온 세대가 아닐까 추정한다.”

-북한이 핵무력을 완성했다고 보나?

“100퍼센트 완성이라고 보이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 큰소리 칠 수 있는 수준까지는 됐다고 본다.”

 
김홍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윤희훈 기자
-북한이 포기를 염두에 두고 핵개발에 나섰다는 말이 된다.

“포기하더라도 값을 비싸게 받을 수 있다면 가치가 있다. 당장 포기하고 항복한다는 것도 아니다. 미국의 태도와 주변국의 보상에 따라서 핵포기가 빨라질 수도, 늦어질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흥정을 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이 정도 능력이 돼야 상대가 존중한다는 마인드가 있었다.”

-수단에 불과한다면 정말 폐기할 것이라고 보나?

“물론 이게 하루아침에 다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가격만 맞는다면. 가격은 경제적인 것만 말하는게 아니다. 평화협정이나 북미수교와 같은 불가역적인 안전보장이 필요하다. 미국은 불가역적인 핵폐기만 말하는데, 북한에서는 자기네들의 안전보장도 불가역적으로 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핵을 깨끗이 포기했는데 갑자기 미국이 태도를 바꾸면 북한으로선 당하게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겠나. 핵포기가 북한으로서 쉬운 일은 아니다. 핵을 그동안 종교처럼 주민들에게 강조해왔다. 김정은 입장에선 핵포기의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안전보장을 받는다면 ‘우리의 힘이 커져서 미국도 우리를 함부로 못하게 됐다’는 식으로 정치적으로 선전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외부에서 경제적으로 지원이 들어와서 국민 삶이 향상된다면, 상층부부터 서민들까지 경제적 혜택을 누리게 된다면 핵포기를 합리화할 수 있다.”

-불가역적인 안전보장을 말했는데, 북한이 원하는 안전보장 수준은 어느정도라고 보나?

“내가 북한과 직접 협상을 한 건 아니기 때문에 정확히 그들의 생각을 다 알순 없다. 전 그런 부분 때문에라도 북한과의 대화가 중요하다고 주장을 해왔다. 대화를 해야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있다. 또 대화를 해야 무엇보다 중요한 신뢰 구축이 가능하다. 상호 신뢰가 구축되면 사소한 것 하나하나를 따지다가 협상이 깨지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신뢰만 구축되면 어렵다고 생각하던 일도 쉽게 합의가 된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연합훈련 축소,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 연합사 해체, 주한미군 철수까지 요구할 것이라고 한다.

“저는 앞의 세가지는 받아들일 수 있는 주장이지만, 주한미군의 무조건적인 철수는 우리 입장에서 무조건 받을 수 있는 조건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북한이 그걸 요구할 정도로 어리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북한은 자신들의 안전만 보장하면, 주한미군이 있어도 개의치 않는다는 이야기를 이미 김일성 주석 때부터 해왔다. 김정일 위원장 때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쉽게 북미정상회담에 응한 것은 북한이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판단했고, 또 지금 얘기한 것처럼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5월에 열릴 북미정상회담이 잘못되면 되려 미국이 군사적 옵션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의견도 있다.

“북한이 회담에서 백기투항할 것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이 착각하면 안된다. 전쟁에서 패배한 패전국도 아닌 북한이 그럴 이유가 없다. 요즘 자주 거론되는 리비아식 해법도 3년 걸렸다. 트럼프 대통령이나 김정은이나 한국이나, 정상회담에 응한 것은 일종의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격이다. 여기서 무리하게 내리려고 하면 큰 상처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쉽게 유턴을 못한다. 트럼프 입장에선 그동안 악마로 여겨왔던 북한과의 대화를 성급하게 OK 한건데, 갑자기 태도를 바꾸면 국내 정치적으로 타격이 크다. 김정은이 베이징을 방문한 것은 미국이 협상 결렬됐다고 해서 군사적 옵션을 선택하는 행위를 쉽게 하지 못하도록 안전 장치를 만든 것으로 볼 수 있다. 양측 다 쉽게 판을 깰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북한에게 중국이 안전장치라면, 미국은 국내 정치 상황이 안전장치라는 말인가?

“그렇다. 지금 이게 흐지부지되거나, ‘협상했는데 실패다’ 이렇게 되면, ‘뭐하러 거기 나갔느냐’는 비난이 트럼프에게 쇄도할 것이다. 안그래도 지금 정치적 입지가 안좋은 상황에 집중 포화를 받을 수 있다. 트럼프가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직접 나서서 큰 가닥은 합의를 보고, 그 공을 자기가 차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강하게 밀어붙였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2월 메릴랜드주 옥슨힐에서 열린 보수정치행동위원회(CPAC) 연례총회에서 연설하는 볼턴 NSC 보좌관 내정자. /연합뉴스
-리비아식 해법을 언급했는데, 리비아식 해법을 북핵 해결에 적용할 수 있다고 보나?

“리비아도 하루아침에 다 포기한 것은 아니다. 미국의 대표적 강경파인 존 볼턴이 주장하는 북핵 해결 방안은 세계 역사상 한번도 없는 해결방식이다.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북미정상회담이 비핵화를 위한 대화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핵무기 프로그램들을 폐기할 것인지 방법부터 논의하자고 요구할 것이라며, 북한이 비핵화를 한다고 해서 미국이 경제적 지원을 제공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볼턴의 구상은 불가능한 이야기다. 리비아도 비핵화까지 2~3년이 걸렸다. 리비아는 북한처럼 핵개발이 고도화되지 않은 상태였다. 북한만 압박할 게 아니라 당근도 보여주면서 ‘너희가 빨리하면 빨리 할수록 이 당근을 가져갈 수 있다’ 이런 당근과 채찍 양면을 다쓰는 전략이 필요하다.”

-북미 협상을 앞두고 우리 정부가 ‘중재자’라고 역할을 표현했는데.

“중재자 또는 조정자.”

-보수 진영에선 ‘우리가 핵·미사일의 피해 당사자인데 어떻게 중재자가 되냐’는 비판이 나온다.

“미국의 이해 관계와 우리의 이해관계가 100퍼센트 일치하진 않는다. 미국 강경파 중에는 한국에 죽는 사람이 생기더라도 그냥 전쟁을 해서 북한을 공격하자는 사람도 있다.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나. 미국엔 자기 나라에만 미사일이 안오면 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는 그런 이야길 할 순 없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전쟁이 나면 일본에도 불똥이 튄다. 주변국과 멀리 떨어져 있는 미국의 입장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중재자가 의미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벌써 북미회담이 성사된다고 하니까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에서 따돌림(패싱)을 당할까봐 일본과 중국이 안달한다. 우리를 대하는 태도도 옛날보다 훨씬 부드러워지고, 우리에게 구애하는 상황이 됐다. 저는 전부터 ‘우리가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과거 6·15 회담 이후에 했던 것처럼, 중간에서 상황을 잘 조정해서 평화를 이끌어내는 역할만 어느 정도 한다면 대한민국의 국격이 높아지고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는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금 그렇게 돼가고 있지 않나. ‘북핵 문제는 우리가 당사자인데 왜 중재자냐’고 하는데, 북핵 문제는 근본적으로 북미간의 갈등 때문에 생긴 것으로, 우리가 모든 걸 결정할 수 없다. 미국도 그걸 받아들이지 않고, 북한도 그걸 받아들이지 않는다. 과거 북한은 우리와 핵문제 자체를 논의조차 안하려고 했는데, 이제는 특사단에게도 비핵화는 김일성의 유훈이라고 이야기했다. 이것만도 긍정적인 변화다. 우리에게 외교적으로 유리한 상황이 왔다고 본다.”

-김정은이 시진핑 주석을 만났을 때, ‘선대의 유훈은 비핵화’라고 했다. 그런데 이걸 두고 ‘북한의 선대 유훈은 핵무장 아니었나’는 말도 나온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 때부터 자기들은 한반도에 핵이 하나도 없는 상황을 원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그 당시에 남쪽엔 미국의 전술핵이 있었고, 걸핏하면 미군의 핵항공모함 등 전략자산이 왔다. 그러자 북측에선 ‘우리를 핵으로 위협하니, 우리도 핵을 가져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북한은 궁극적으로는 양쪽에 핵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 가장 바람직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후로 핵개발을 하면서 김일성 유훈 이야기는 쑥 들어갔다. 갑자기 이를 꺼낸 것은 비핵화를 진지하게 논의할 준비가 돼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북한에서 최고지도자의 말은 곧 법이기 때문에 이걸 180도 뒤집지는 못할 것이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이어질텐데, 민화협으로서의 역할이 있다면? 구상한 민간교류 방안이 있나?

“아직은 관망하고 있다. 정상회담 전까지는 아무래도 정부 대 정부 간의 여러 가지 논의할 문제가 많으니, 민간은 그 후에 나서는게 옳다고 본다. 정상회담 후에 방북해 민간 교류를 어떻게 활성화할 수 있을지 논의하려고 한다.”
 
김홍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윤희훈 기자
-방북해 논의하게 되면 교류 방안은 문화교류를 중점적으로?

“지금 상황에 단정적으로 뭐는 할수 있다, 뭐는 할 수 없다고 하기 어렵다. 지난 두어달간 북쪽과 접촉해보고 느낀 점인데, 북한 사회가 상당히 많이 변했다는 것이다. 김정일 정권과 김정은 정권은 많이 다르다. 북쪽에서 지금 생각하는 남북 교류는 과거보다는 훨씬 개방적이고 좀더 규모가 크다. 가서 그들의 생각을 직접 들어보기 전까지는 우리가 옛날 경험을 갖고 ‘이런 걸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건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향후 남북 경제협력도 파격적으로?

“일단 유엔 대북제재가 풀려야 하겠지만, 그쪽에선 큰 규모와 수준의 경협을 생각하고 있다. 개성공단의 경우, 솔직히 싼 임금을 우리가 활용한 것 아닌가. 듣기론 북한에서 앞으로 생각하는 경제개발 플랜은 대도시엔 첨단산업기지를 세우고, 농촌을 현대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쪽에서 품종개량한 종자를 받는다든지. 또 동해안의 나진선봉에서 금강산까지 신도시와 관광특구를 개발하겠다는 플랜이 있다고 들었다.”

-북한은 ‘모기장식 개방’(범죄, 부정 부패 등은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경제적으로 필요한 것만 받아들이는 점진적·선별적 경제 개방 방식)을 추진하려고 하는데, 저런 구상이라면 너무 빠른 것 아닌가?

“중국도 특정 지역만 개방하면서 서서히 개방 범위를 늘려갔다. 북한의 개방은 중국보다 속도가 더 빠를 수도 있다.”

-개방이 너무 빨리 전개되면 체제 안전성을 위협하는 것 아닌가?

“북한은 중국이나 베트남 등을 보면서 일당 지배를 계속 하면서도 개혁개방을 하는 모델을 계속 연구하고 있다. 최근 보도를 보면 중동의 왕국이나 심지어 싱가폴도 연구 대상으로 본다. 우리는 싱가폴을 완전한 자본주의 국가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2대 세습을 했고, 사실상 1당이 지배하는 나라다. 하지만 경제는 엄청 발전했다. 이 또한 북한이 고려할 수 있는 모델이다. 꿈 같은 이야기지만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자신 이후론 권력이 세습되지 않더라도 경제개발에 나설 수 있다고 보나?

“김일성과 김정일, 두 선대 지도자는 과거를 기반으로 권력을 유지했다. 항일투쟁과 최강대국인 미국과 싸워 이겨냈다는 것을 정권 존립 근거로 삼았다. 김정은은 경제를 발전시켜 다들 잘먹고 잘사는 나라로, 쉽게 말해서 그걸 만든 지도자라는 점을 내세워 자신의 집권 정당성을 찾을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박정희를 숭배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그들에게 박정희의 인권 탄압과 민주주의 말살을 이야기하면 ‘박정희 덕분에 먹고 살게 됐다’며 정당화하지 않나.”

-중국 정보통을 많이 만난다고 했는데, 현재 북한의 움직임을 중국에선 어떻게 보고 있나?

“우리 쪽에선 지금 과거 생각만 하면서 ‘북한을 믿을 수 있느냐, 북한이 진짜 비핵화하겠느냐, 저러다 금방 태도 바꾸는 것 아니냐’고 염려한다. 반면 중국에선 북한이 순식간에 친미·친서방으로 갈까봐 두려워한다. 중국 당국과 잘 통하는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남북미가 협상을 하는 3자 구도에서 중국이 따돌림 당하지 않을까 굉장히 걱정을 하고 있다. 심지어 미국과 북한이 비핵화 합의를 했는데, 핵 사찰을 IAEA가 아니라 미군이 직접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걱정까지 하더라. 우리로선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날까 하는데, 그 쪽에선 벌써 북쪽 땅에 미군이 발을 닿는 걸 생각하면서 공포를 느낀다. 이런 걱정 때문에 부랴부랴 요구조건을 다 들어주면서 김정은을 베이징으로 초대한 것이다.”

-중국이 김정은을 베이징으로 부른 게 ‘차이나 패싱’을 막기 위해서인가?

“2015년 12월 북한의 모란봉악단이 베이징을 갔다가 취소하고 돌아간 적이 있다. 당시 중국에선 북한의 추가 핵실험 정보를 파악하고, 모란봉악단 공연으로 분위기를 푼 다음에 김정은을 초대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일이 깨지는 바람에 오히려 북한이 핵실험을 앞당긴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북중정상회담이 쉽게 이뤄지지 않은 이유가 북쪽의 전제조건, 특히 의전과 경호를 김정일 수준으로 해달라는 요구를 중국쪽에서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제가 파악한 바로는 연초부터 중국이 북한 최고지도자의 방문을 성사시키려했는데 북쪽에서 답을 안주면서 애를 태웠다. 그러면서 북한이 ‘우리가 이때 가려고 하는데, 추가로 두세가지 조건을 다들어주면 갈 수 있다’고 했다. 급한 입장인 중국이 체면 불구하고 다 들어줄테니 오라고 한 것이다.”
 
중국을 방문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오른쪽 두 번째)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 네 번째)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중 혈맹은 사실상 균열됐다고 보나?

“균열은 예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서로 필요한 부분이 있다. 지금은 중국이 더 아쉬운 입장이 됐다. 남북미 3자회담 이야기가 나오는데다, 김정은이 평양에 돌아간 다음에 ‘한국과 미국이 선의를 보인다면 비핵화 해결 가능하다’는 말이 나왔다. 이 이야기는 비핵화 프로세스를 3자가 다 할 수 있다. 중국은 안끼워줄 수 있다는 말이다. 중국이 김정은을 융숭하게 대접했는데, 14억을 호령하는 황제 지위에 오른 시진핑 입장에선 체면이 깎였을 수 있다. 중국 국민 중 북한의 전략적·지정학적 역할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왜 북한한테 저래야 돼’라며 불만을 토로할 수 있다. 그런데 북한이 미국과 가까워지고 중국과 멀어지면, 중국으로선 악몽같은 시나리오다. 중국은 그런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

-최근 ‘북중정상회담 이후 북중 국경 지역에 대한 제재를 풀었다’는 보도가 나온다.

“제재는 어느정도 완화할 것이다. 미국도 북미협상이 어떻게 되든간에 제재를 강화하자는 주장은 먹히지 않을 것이다. 국제사회는 유엔제재가 북한을 고사시키기 위한 것이 아닌, 북한을 평화적 해결을 위한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명시했다. 어쨌거나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나왔다.

-이번 대화 국면을 계기로 대북 제재는 완화된다?

“저는 단계적으로 북한이 양보를 하면 미국도 단계적으로 양보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협상하면서 당근과 채찍을 다 써야지, 자꾸 채찍만 쓰려고 하면 누가 협상을 하겠느냐. 과거 저희 아버지(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6·15 회담을 하고 온 후 남북교류가 활성화됐을 때, 보수세력이나 야당인 한나라당에선 상호주의를 강조하면서 ‘우리가 하나 주면 저쪽에서도 하나 받아야지, 왜 주기만 하느냐’고 비판했다. 상호주의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미국과 북한의 협상도 상호주의 원칙이 적용돼야 하지 않나. 주고 받는 게 결코 나쁜 게 아니다. 제재 완화는 상대 태도가 나빠지면 다시 강화하면 된다. 제재를 완화하는 게 돌이킬 수 없는 뭔가를 주는 건 아니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인 ‘햇볕정책’에 대해 당시 야당에선 ‘퍼주기’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나?

“인터넷에 보면 과거 자료가 다 나와 있다. 김대중 정부가 북한에 지원한 액수가 다른 정부에 비해 많은 것도 아니다. 또 현금을 지원한 게 아니고 식량이나 비료 등을 지원했다. 현대에서 송금한 것은 민간 기업 차원에서 북한의 금강산 등의 사업권을 따내기 위한 비즈니스 성격의 거래다. 정부가 북한에 현금을 준 것은 얼마 안된다. 퍼주기라는 건 틀린 표현이다. 앞으로 핵문제가 풀리고 남북관계가 풀려 제재나 걸림돌이 사라지면 바로 북으로 진출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그 시점에 북한 투자를 퍼주기라고 비난하며 반대할까봐 걱정된다. 북한 경제가 개방되면 북한이 한민족이라고 우리에게 우선권을 주며 우리를 기다릴 것이라고 기대해선 안된다. 김정은이 경제 발전을 중시하고 실용주의적 사고를 갖고 있다면 누구든 먼저 돈을 갖고 오고, 또 더 많은 돈을 갖고 온 쪽과 파트너십을 맺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북방경제를 개척할 기회를 중국이나 일본에 뺏길 수도 있다. 앞으로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북한에 진출할 길이 뚫린다면 이것은 국운 상승의 절호의 기회다. 우리가 대륙으로 진출하고 동북아에서 정말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다는 뜻이다. 절대 이를 놓쳐선 안된다.”

-시간끌기가 안되려면 비핵화 타임테이블을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아까부터 상호주의를 이야기했다. 북한에게만 언제까지 동결하고 폐기하라고 요구할 게 아니다. 한국과 미국도 어떤 식으로 북한 체제의 항구적인 안전을 보장해줄 수 있는지, 또 북미수교를 해줄 수 있는지 제시해야 한다. 일방적으로 백기투항하라고 하면 안된다. 서로 주고 받는 식으로 해야 한다.”

-언제까지 비핵화를 완료하겠다고 명시해야 하지 않나? 어느 정도의 시간이면 가능하다고 보나?

“회담을 하기 전인데, 그걸 단정적으로 말하긴 어렵다. 난 빠르면 2~3년내에 가능하다고 본다. 특히 북쪽에서 성의 있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먼저 나오면 우리도 안심하고 여유를 갖고 (비핵화 프로세스를)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김홍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 :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삼남으로 , 김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사이에서 태어났다.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객원교수로 일하다, 2016년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해 민주당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 12월 민화협 대표 상임의장으로 취임했다. 고려대 불어불문학과를 나와, 미국 남캘리포니아대학교 대학원 국제정치학 석사를 수료했다. 미국 포모나대학교 태평양연구소 객원연구원을 역임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4/08/201804080109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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