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랑·58) 자유당 당수는 55년 이후 장기집권해온 거함(거함) 자민당호를 93년 거꾸러 뜨린 정치인이다. 11일 한국에 온 그가 12일 오전 11시부터 서울시내 호텔에서 기자들과 얘기를 나눴다.

오자와는 약속시간보다 10분 일찍 회견장에 들어와 “빨리들 오셨군”하며 말문을 열었다.

나카네(중근맹) 일본 광보문화원장이 “오늘 간담회는 ‘On Record(보도를 전제로 한)’입니다”라고 말하자 “그럼 해볼까”라며 방한 배경 등을 설명했다. 이때부터는 존대말을 썼다.

“오랜 친구이자 선배인 박태준(박태준)씨의 총리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동안 수고하신 김종필(김종필) 전 총리께 인사말씀도 전했습니다. 선거도 가까워졌고…. ”

오자와 당수는 김대중(김대중) 대통령 예방에 대해서도 말했다. “사실 청와대 방문은 예정에 없었는데,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주신 것에 대해 황송스럽고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특별한 것은 없었습니다. ”

자민당을 무너뜨렸던 오자와 당수는 지금 자민당과 손잡고 연립정권을 운영하고 있다. 곧 총선이 실시될 것이란 점도 우리와 비슷하다. 그래서 나온 질문이 “한국과 일본 정치상황이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답변은 “서로 처지가 비슷하기 때문에 청와대에선 그런 얘기 하지 않았습니다”였고, 그러자 웃음이 터졌다.

다소 부드러워진 느낌을 준 오자와는 그러나 3가지 질문에 대해 강한 결단력과 추진력이란 본 모습을 보여줬다. 첫째는 일왕의 방한문제.

“김대중 대통령께서 한국민을 대표해 일왕을 초청해 주셨으니, 실무작업을 별도로 치더라도, 순수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대처해야 합니다. 도대체 일본은 뭘 걱정하고 있는 것일까요. (일왕 방한이 결정되지 못하는 것은)정계가 결단을 내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결단을 내리고 책임지면 됩니다. 그런데 아직도 주무부서인 외무성에 책임지우려 하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 이는 지난해 방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다소 어렵지 않겠느냐”라던 반응에서 많이 변한 것이었다.

둘째는 현재 난항을 겪고 있는 재일교포의 지방참정권 문제. “양국 국가간, 또 국민간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는 자민-자유-공명당 연립정권의 합의사항입니다. 합의했으면 실행해야하고, 실행할 수 없으면 합의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속히 확실히 실행해야 합니다. ”

오자와 당수의 성격이 드러난 마지막 질문은 대북문제. “북한과 수교문제가 나오면 물자나 자금을 원조하느니 마느니 얘기만 합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일본의 기본입장을 정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전략과 사고로 북한과 협상에 임할 것인지를 토론하고 확고히 정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니까, 한국에서 ‘일본의 생각을 모르겠다’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가지고는 신뢰관계가 구축되지 않습니다. 토론과 결론이 생략된 상황에서의 대북교섭에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

10분 일찍 온 오자와는 예정보다 10분 일찍 간담회를 마쳤다. 마이크를 치우며 다시 반말로 돌아가 “고마워들”이라고 기자들에게 인사했고, 또 다시 차를 마시며 “이것 참 맛있네”라고 말했다.

/이혁재기자 elvi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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