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의 아파트 공사에 동원된 청년돌격대원들. 북한 전역의 청년들이 모이는 돌격대는 지역감정이 얽히고 부닥치는 곳이기도 하다.

북한 공식 매체나 출판물에 지역감정에 대해 언급한 글이나 기사가 실린 적은 거의 없다. 과거 「함경도 제일주의」를 내세운 일부 간부들의 언행이 영화나 소설에 간헐적으로 등장했을 뿐이다. 적어도 70년대 이후 지역감정이 정치적으로 문제가 된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일반 사회생활에서 주민들이 부대끼는 지역감정은 자못심각하다. 특히 억센 말투와 거친 성격의 함경도 사람들에 대해 평안도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 좋지 않다.

함경도를 대표하는 함흥 사람들은 얄개(얄미울 정도로 영악하고 기질이 강하다는 표현)로, 인근의 정평은 짜드래기(질기고 거칠다는 표현)로 불린다. 함경남도 사람들은 보통 찔락이(승부욕이 강하고 나서기 좋아한다는 표현)로, 함경북도는 왕찔락이로 불려 함경남도보다 함경북도가 좀더 강하게 각인돼 있지만 실제로 「완력」이 세기로는 함흥사람을 제일로 친다. 평안도 사람들은 함경도사람들에 대해 성격이 급하고 승부욕이 지나치며, 나서기 좋아하는 점을 흠으로 꼽는다. 상대방을 강박하는 듯한 심한 사투리는 듣기조차 싫어한다. 함경도 사람들은 성격이 투박하고 급한 반면 의리가 깊고 생활력이 강한 것을 장점으로 생각한다.

함경도 사람들에게 평안도 사람, 특히 평양, 남포, 개성 사람들은 「노랭이」와 「깍쟁이」로 통한다. 노랭이는 건달(일하기 싫어하고 건들건들 놀기 좋아하는 사람)과 한없이 약아빠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특히 노력동원 때 가장 '뺀질'거리는 것은 평안도, 특히 평양사람들로 소문난 있다. 평안북도는 북데기(실속이 적고 얻을 것이 없다는 뜻)로 불리는데 평안남도 사람보다는 덜 노랭이라는 인식이 짙다.

함경도 사람들은 황해도 사람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황해도 사람들은 「뗑해도」나 「물농포」 등으로 통한다. 농사를 많이 짓고 벌방지방이라 사람들이 온순하고 말투도 느리기 때문이다. 황해도 사람들도 함경도 사람들과는 웬만하면 상대하려 하지 않는다. 자강도는 당콩(넝쿨로 된 한해살이 식물로 촌스럽고 털털하다는 표현)으로, 양강도 사람은 감자(전형적인 촌사람이라는 뜻)로 불린다. 자강도는 평안도와 가까운 성향이고 양강도는 함경도 성향이 강하다.

함경도 출신의 탈북자 김상일(34ㆍ가명)씨는 평양에서 대학에 다닐 때 처음 한동안 평양학생들로부터 심한 놀림을 받았다고 한다. 보통 한 학급인원이 25명 정도이고 이 가운데 2~3명이 함경도 출신이라고 한다. 사투리를 쓰면 흉내낸다든가 놀리는 듯한 웃음 때문에 몇 달 동안 싸우다 시피 했다고 한다. 평양 우월감에 빠져 함경도 사람들을 무시할 때면 울화가 치밀 정도다. 공동생활 때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식사하러 가거나 친구를 사귀는 것은 대부분 같은 함경도 출신이라고 한다.

청년돌격대는 지역감정의 각축장이다. 대규모 건설공사가 이루어지는 현장에는 각 도에서 청년들이 돌격대로 뽑혀 온다. 젊은이들이 모이면 어김없이 패싸움이 벌어지는데 함경도와 평안도간의 다툼이 대부분이다. 나머지 도(도)는 지역별로 가까운 쪽을 응원한다.

평양시 인민보안원들은 사고 피의자가 함경도 사투리를 쓰면 일단 두들겨 패거나해서 기선부터 제압한다. 그만큼 평양주민들은 함경도 사람들을 무시하고 경원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평양에서 당하고 고향으로 돌아간 함경도 사람들은 『어디 두고보자』며 이를 갈게 된다.

반대로 함흥역전에서 평안도 말을 쓰고 다니다가는 뼈도 건질 수 없다. 평안도 말을 쓰면 이유 없이 구타하고 물건은 물론 옷까지 다 벗겨버리기도 한다. 특히 평양사람들을 싫어한다. 평양에 가면 무시당하고 평양시민은 온갖 특혜를 다 받기 때문이다.

일부 가정에서는 평안도와 함경도 집안끼리 결혼도 꺼리는 경향이 있는데 최근 들어 이런 분위기는 완화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하지만 함경도 사람들은 여전히 황해도 여성과는 결혼을 회피한다. 황해도는 주로 농촌지방이라 함경도 여성에 비해 생활력이 약하다는 인식이 깊이 박혀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해도 남성들은 함경도 여자를 선호하는 편이다. 북한의 지역감정은 정치적 색채나 역사적 갈등과는 무관하고 지역감정보다는 지역적 기질이나 성향 때문에 서로가 싫어하는 것일 뿐 남한의 지역감정과는 다소 차원이 다르다. /강철환기자 nkc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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