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8일 국가미사일방위(NMD) 체제 미사일 요격 실험 실패는 최첨단 군사력을 자랑하던 미국의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또 NMD 체제의 장래에도 짙은 암운이 드리워졌다.

국방 전문가들은 클린턴 대통령이 임기 내 NMD 추진 결정을 내리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사일 요격 실험은 작년 10월의 1차 실험만 성공했을뿐, 올 1월에 이어 이번에도 실패함으로써 실행력에 큰 의문부호가 던져진 셈이다.

무엇보다 이번 실패의 내용이 미국으로선 낯뜨거운 상황이다. 캘리포니아주 반덴버그 공군기지에서의 대륙간 탄도탄 발사가 전자감응장치의 배터리 이상으로 2시간 지연됐으며, 레이더 교란용 풍선은 펼쳐지지 않았다.

태평양에서 발사된 요격미사일은 전자신호를 수신하지 못함으로써 로켓에서 분리조차 되지 않아, 목표물과는 전혀 엉뚱하게 빗나가 버렸다.

미국의 끈질긴 설득에도 불구하고 반대론을 굽히지 않았던 세계 각국은 쾌재를 불렀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야코블레프 전략로켓군 사령관은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NMD로 미국을 방어할 수 없으며 이 체제를 도입하려는 미국의 시도는 단지 납세자들의 돈을 낭비하는 것일 뿐”이라고 쏘아 붙였다.

오랜 동맹국인 영국 외무부 대변인은 “이번 실험 실패는 미국인들만의 문제”라고 차갑게 지적한 뒤, “영국 정부는 그동안 미국이 러시아와의 탄도탄 요격미사일(ABM)협정을 준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고 말했다.

미국 국내에서도 NMD 불가론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민주당의 바이런 도건 상원의원은 “이번 실패로 대통령은 NMD 추진 결정을 발표하지 않아야 하며 또 그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앤서니 코즈먼은 “이런 일이 터지면 조직을 재편하고 기존 계획을 강행하지 않는 법”이라고 인책론까지 꺼냈다. 그동안 NMD의 기술적 결함을 지적했던 국방 전문가들은 그것 보란듯이 언론매체를 통해 NMD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설파했다.

공화당의 사드 코크런 상원의원 등 NMD 지지자들은 이번 실패는 국방부의 자금 부족을 입증한 것이라며 더욱 적극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이같은 목소리는 메아리가 약한 상황이다.

당혹감에 빠진 미 행정부는 NMD 추진 여부를 계속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일단 시간을 벌겠다는 자세를 취했다. 자크 갠슬러 국방부 부장관은 “이번 실험 실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오는 2005년까지 NMD 실전배치 완료가 가능한지 다시 평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군사전문가들은 국방부가 그동안 서둘러온 NMD 배치 일정이 최소한 연기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공군 실무자들도 “이번 결과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기술적 작업이 많음을 보여줬다”고 인정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이번 실험에 대한 국방부의 평가 보고서와 이달 말까지 제출될 예정인 CIA 등 정보부서의 전략 보고서를 토대로 NMD 추진 여부에 대한 결정을 내릴 전망이다. 그러나 정보 부서 내에서도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위협 가능성에 대한 평가가 서로 엇갈리는등 NMD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론이 만만치 않아, NMD가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워싱턴=주용중기자 midway@chosun.com

NMD 실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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