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남북한 경협의 열기가 매우 뜨겁다. 특히 현대의 정주영 회장이 방북 당시 발표한 대규모 프로젝트들은 남북한 모두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한 것 같다.

경협의 긍정적인 역할을 강조해왔던 필자로서는 이러한 경협 열기에 찬물을 끼얹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지나치게 빨리 나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으며, 이는 다음과 같은 관점에 근거하고 있다.

첫째, 아직 한국경제 내부의 부실이 정리되지 않았으며, 현대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하다. 금융권의 부실을 정리하는 데 아직도 수십조원이 더 필요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으며, 기업개혁의 성과 역시 아직은 불투명하다.

특히 최근 금융불안을 야기한 장본인 중의 하나였던 현대의 경우 내부의 경영권 문제와 유동성 문제 등 당장에 해결해야 할 발등에 불도 못 끈 상태이다. 심지어 자칫하면 제2의 경제위기가 올 수도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때에 과연 정부와 현대가 구상하는 대규모 경협 프로그램들을 제대로 이행할 능력이 우리 내부에 있는지 의아하다.

둘째, 경협에 대한 재원조달 논의가 아직 충분치 못하다. 만약 경협이 수익성 있는 거래를 통하여 남북한 서로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닌 일방적인 지원이라면, 이는 결국 한국의 국민들에게 부담이 갈 것이다.

최근 국제기구로부터의 지원에 대한 논의가 있으나 아직은 구체화한 것이 없으며 또한 이러한 구상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것도 문제이다.

셋째, 많은 사람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으로 북한의 진정한 태도변화가 확인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현 시점에서 북한의 정치적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경제개혁에 대한 의지만이라도 북한이 보인다면 한국은 상기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실제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다. 경제적으로는 외부의 도움을 받기 위한 개방에만 적극적일 뿐이지, 이것보다 더 중요한 내부개혁은 여전히 뒷전이다.

또한 정치적으로도 한국을 대하는 말투는 달라졌지만 적화통일노선을 포기하였다는 구체적 실증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북한의 최근 변화가 과연 진정한 변화인지, 아니면 고도의 정치적 위장술인지는 아직 두고 보아야 한다. 물론 한국이 먼저 변화된 태도를 보여주어야 북한도 변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통일한국의 모습은 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이며, 그 누가 뭐라 하여도 이러한 이념에 더욱 근접하고 있는 것은 한국이지 북한이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아무래도 한국보다는 북한이 더 많은 변화를 해야 하는 것은 자명하다.

필자는 물론 경협을 중단하자는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인도적인 지원은 정치 상황과 별도로 한국이 일보 희생하는 자세로 계속되어야 하며, 또한 경제논리에 입각한 경협은 더욱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북의 변화를 유도할 수 없는 일방적인 대규모 지원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 특히 무리한 투자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때 이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남북한 관계에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제 우리는 통일의 첫 단추를 끼운 셈이라고 한다. 그러나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나중에 처음부터 모두 다시 끼워야 한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일단 우리가 할 수 있는 성의는 다 보인 셈이니, 지나친 흥분과 성급함을 자제하고 차가운 머리로 북한의 반응을 지켜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 이두원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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