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바둑이 처음 보급된 시기는 언제부터일까.

지금까지 속설로는 중국 은말(殷末) 난리를 피해 조선으로 건너온 기자(箕子) 전파설과 한사군 유입설 등 두가지 설이 유력하게 전해지고 있으나 정확히 고증되지는 못하고 있다.

북한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 최근호(11.6)는 바둑이 오랜 역사를 가진 민족오락의 하나로서 이미 삼국시대에 널리 보급되었다면서 < 삼국사기 >에 기록된 백제 개로왕과 관련된 바둑이야기를 소개, 바둑역사를 가늠케 했다.

< 삼국사기 >의 바둑이야기는 백제본기(百濟本紀) 제3권 `개로왕편'(개로왕21년.475년)에 나오는 고구려 중 도림과 백제 개로왕의 바둑일화를 소개한 것으로, 이로 미뤄 볼 때 이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바둑이 들어왔음을 말해 주고 있다.

삼국시대에 보급된 바둑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계승되어 널리 보급되면서 일본에까지 전파되었으며 그 수준도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 고려사 >에 따르면 13세기 중엽에 곽희분, 조정홍 등 두 기사가 몽골에 바둑원정까지 갔다는 기록이 나오는 것으로 미뤄 고려시대의 바둑 수준이 상당히 높았음을 짐작케 했다.

북한 사회과학원 민속학 연구소의 석일옥 연구원은 민주조선에 기고한 글에서 삼국시대에 널리 보급된 바둑 수준은 매우 높았으며 당시에는 바둑을 일명 `위기', `혁기'라고도 불렀다고 소개했다.

그는 또 삼국시대에 두던 바둑판은 가로세로 같은 간격으로 17줄을 그었으나 그 후에 사귐점이 361개인 19줄로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한편 < 삼국사기 > `개로왕'편에 에 나오는 바둑이야기는 삼국시대 사람들이 어느 정도로 바둑에 흥미를 갖고 있었는가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민주조선은 < 삼국사기 >에 나오는 바둑이야기는 '한 나라의 운명을 책임진 왕이 바둑놀이에만 빠져 나라방비를 소홀히 한 탓으로 나라를 망치는 교훈을 남겨주고 있다'면서 이와 관련된 `개로왕'편 관련 대목을 소개했다.

『475년에 고구려의 장수왕이 도림이라는 중에게 임무를 주어 거짓죄를 짓고 백제로 건너가게 하였다. 당시 백제와 근개로가 바둑을 몹시 좋아 하였는데 도림의 바둑솜씨에 탄복하여 그를 가까이에 두고 귀빈대접까지 하였다.

왕과 친숙해지자 도림은 바둑을 두면서 왕을 꼬여 국고를 탕진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백제왕은 고구려의 진격에 맞서지도 못하고 도망치다가 목숨을 잃었으며 백제는 부득불 수도를 옹진으로 옮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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