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적십자 대표들이 29일 2차 회의에서 8월중 이산가족 교환방문, 9월초 비전향장기수 송환, 면회소 설치 등 3가지 의제에 원칙적으로 합의함으로써,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의 길이 열리게 됐다. 김대중(김대중)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김정일) 국방위원장간의 ‘6·15 공동선언’ 이후 처음 열린 남북대화에서 이끌어낸 이번 합의는 또한 북한의 합의내용 실천 의지를 일단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간과할 수 없다.

공동선언 3항은 ‘8월15일에 즈음한 이산가족 교환방문과 비전향 장기수 문제 해결’만 명시하고, 그 밖의 인도적 문제에 대해선 구체화하지 않았는데, 면회소 설치에도 합의를 이끌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한 당국자는 “북측이 면회소 설치에 원칙적으로 합의한 것은 이산가족 문제를 1회성으로만 끝내려 하지 않을 것이란 기대를 갖게 한다”고 말했다.

양측은 27일 첫날 회의에서 이산가족 교환방문과 비전향장기수 송환 중 어느 것을 먼저 하느냐로 힘겨루기를 했으나, 29일 회의에선 이 두 가지 사안에 쉽게 의견접근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북측이 비전향장기수 송환을 당초 8월초에서 9월초로 늦춘 것이다.

대신 면회소 설치 문제는 양측이 절충한 것으로 보인다. 북측은 단순히 “다음에 논의하자”고 주장했고, 우리측은 “이번 회담에서 설치에 합의함은 물론, 그 시기를 못박자”고 맞섰다. 한 당국자는 “사실 김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판문점 면회소 설치를 제안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이해를 같이 했다”면서 “이번에 면회소 설치시기를 명시하는 게 우리의 당초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오후 늦게 양측은 ‘7월중 적십자회담을 열어 면회소 설치 시기 등의 문제를 논의한다’는 선에서 매듭을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식통에 따르면 이날 오후 열린 정례 국가안보회의 상임위에서 ‘다음 회담 날짜에 합의하면 면회소 설치시기는 그 회담에서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전향장기수 송환과 맞물린 사안인 국군포로나 납북자 문제에 대한 북한측의 답변은 없었다고 한다. 한 고위 당국자는 “국군포로를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남이나 북이나 서로 오고픈 사람들을 방문하게 하자’고 북한측에 요구했다”고 전했다. 이 문제는 29일까지의 회담에서는 결론이 없었다. 그러나 30일 회의에서 북한측이 보다 진전된 입장을 가지고 나올 가능성도 없지 않다. 만약 북한측이 7월중 열릴 적십자 본회담으로 이 문제를 넘긴다해도 우리측은 어떤 형태로든지 합의점을 찾을 것이라고 당국자는 밝혔다.

정부측은 비전향장기수의 송환 규모, 방법 등과 함께 국군포로 문제를 절충하면 타결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재규(박재규) 통일부 장관이 29일 낮 새천년포럼 회원들과의 오찬에서 “북한에 300여명의 국군포로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으며 이들이 한국 방문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한 것은 바로 국군포로 문제에 대해 남북한이 상당한 의견교환을 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 당국자는 “한가지씩 합의를 이뤄나가다보면 궁극적으로 상호 관심사항을 모두 해결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6·15 공동선언의 이행을 낙관했다.

/김인구기자 gink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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