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북도에 살고 있는 림춘길(35ㆍ가명)씨는 그동안 월남자 가족으로서 탄광에서 어렵게 살아왔다. 6.25 때 국군에 협조한 부모는 처형당했고, 아버지 형제중 한 사람이 남한으로 가버리는 바람에 그의 가족들에게 멍에가 됐다. 월남자 가족은 북한에서 평생의 ‘치욕’이었다.

그러나 최근 사정이 달라졌다. 남북 이산가족들의 상봉이 이루어지고, 중국을 통해 남한의 친척들이 돈을 보내오면서 월남자들이 주위의 부러움을 사게 된 것이다. 림씨도 남한의 삼촌을 찾아보기로 했다. 북-중 국경을 넘나드는 밀수꾼을 어렵사리 접촉해 중국 동포를 거쳐 한국에 수소문한 결과 6개월 만에 친척들을 찾을 수 있었다. 삼촌이 실향민으로 이북5도청 관련 서류에 북한의 고향 주소를 적어 놓아 찾기가 어렵지 않았다. 림씨 가족은 지금 한국의 친척들이 보내주는 돈을 잘 받고 있다고 중개인은 전한다.

림씨처럼 한국의 친척을 찾는 북한 주민들이 최근 부쩍 늘고 있다. 지금까지는 한국의 가족들이 중국 동포 등을 통해 북한의 가족을 찾았지만 이제 역으로 북의 가족들이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다.

다른 탄광마을에 살고 있는 안길영(34ㆍ가명)씨는 남한 출신인 아버지의 간절한 소원을 풀어주기 위해 남한의 친척들을 찾아 나섰다. 죽기 전에 남한의 가족 소식이라도 듣고 싶어 하는 아버지의 평생소원을 외면할 수 없어 위험을 무릅썼다. 친척을 찾게 되면 경제적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없지 않았다. 그는 북한에 장사 하러온 중국동포들을 은밀히 만나 아버지의 고향과 형제들 이름을 알려주고 남한에서 수소문해 줄 것을 부탁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안씨는 남한의 친척들로부터 사진과 편지를 받아 아버지의 한을 풀어드릴 수 있었다.

그러나 남한 가족 찾기의 결과가 늘 좋은 것만은 아니다. 황해도에 살고 있는 이성룡(34ㆍ가명)씨는 외가의 가까운 친척을 찾았지만 남한 친척들의 형편이 어려워 도움을 받지 못하고 곤경에 처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유언으로 남긴 남한의 친척을 찾기 위해 그는 보안원들과 보위원들에 뇌물을 주어가면서 중국까지 나왔다. 북한쪽 안내자들과 국경경비대에도 빚을 낸 돈으로 많은 뇌물을 주었다. 남한의 친척들을 만나면 모두 해결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중국서 30일간을 기다렸지만 남쪽 친척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동안 돌보아 주던 중국동포들도 손을 뗐고, 북한으로 돌아갈 수도 없게 돼 버렸다. 중국서 방랑중이던 그는 공안의 단속에 걸려 끌려가다 기적적으로 도망치기도 했고, 지금은 잠적중이다.

최근 월남자 가족에 대한 북한 당국과 주민들의 태도가 많이 변했지만 남한의 가족친척들과 접촉을 시도하는 것은 여전히 위험천만한 일이다. 자칫하면 간첩죄로 몰리게 된다. 중간에서 연결고리가 되어 주는 중개인들도 최고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다.

북한의 가족들이 먼저 남한의 친척을 찾을 경우 남한 가족이 부담하는 비용도 대부분 더 많이 든다. 중개인들의 손에 북한가족의 운명이 달려있기 때문에 부르는 게 값이 된다. 지난 여름 막대한 수수료 때문에 중국동포를 끼지 않고 직접 북의 친척과 만나려고 시도했던 재미교포가 북중 국경에서 괴한들에게 달러를 몽땅 털리고 봉변을 당하는 사건도 있었다.

어렵게 살던 월남자 가족이 갑자기 잘 살게 되자 보위부의 감시도 심해졌다. 이들의 추적에 남한 가족을 접촉한 사실이 드러나 돈을 전부 압수당하고 처벌받는 일이 빈번하다고 한다. 공식적인 상봉 기회를 대폭 늘리는 것만이 이산가족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길이다.
/강철환기자nkc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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