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역사학계가 최근 또다시 평양을 중심으로한 대동강유역을 `고대 인류문명 발상지의 하나'라고 주장,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북한 사회과학원 소속 역사학자 전룡호는 '통일신보' 최근호 (2001,10,20)에 기고한 논문에서 '평양을 중심으로 한 대동강 유역은 인류문화 발상지의 하나'라고 강조하고 그 근거로 '이곳에서 조선사람의 선조로 되는 원인(猿人),고인(古人),신인(新人), 그리고 조선 옛 유형사람들의 뼈 화석들과 그들이 남겨놓은 유물들이 많이 드러난 것'을 제시했다.

북한은 지난 98년 3월 최초로 이 지역을 세계문명 발상지의 하나라고 발표한 뒤 평양을 중심으로 한 대동강일대의 옛 문화를 < 대동강문화 >라고 명명했다.

특히 < 대동강문화 >로 명명한 것은 '유물들이 수많이 드러난 평양을 중심으로 대동강의 중하유역을 포괄하는 광활한 지역이 인류와 고대문명의 발상지, 중심지의 하나였다는 것을 알리는 역사적인 선포로 된다'고 자평했다.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객관적인 평가를 받게 되면 특정 지역의 문화에 고유한 이름을 부여하는 것은 통상적인 학술행위의 하나이다.

따라서 북한의 < 대동강문화 > 명명도 일단 그동안 이 지역에 대한 고고학적발굴을 통해 이룩한 연구결과를 종합정리해 내린 학술작업의 하나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이 지역의 고대문화를 아우르는 학술용어로서 < 대동강문화 >가 새롭게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고있다.

학술적인 성과나 의의 이상의 정치적인 의미가 내재돼 있다는 것이다.

즉 그동안 평양에서 단군릉 발굴이후 진행해온 일련의 유물.유적 발굴을 토대로 주장해온 단군과 관련한 북한의 공식 담론을 최종 확인하고 일단락짓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이같은 정치적 의미는 평양을 중심으로 한 대동강일대의 유물.유적발굴 성과를 단군릉 발굴(93.10)을 하나의 기점으로 그 이전과 이후로 구분해 살펴보면 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단군릉 발굴 이전의 것으로는 △ 평양 상원군에서 발굴(66∼68년)된 검은모루유적(구석기 초기) △ 평양 력포구역에서 발굴(71년)한 력포사람 △ 평남 덕천시 승리산 동굴에서 발굴(72년)한 덕천사람과 승리산사람 △ 평양 승호구역 만달리에서 발굴(79 ∼ 80년)한 만달사람 등이 대표적이다.

이 유물.유적들을 보면 인류의 발생.진화과정과 구석기시대의 것에 치우쳐 있고 단군이나 고조선에 관한 것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발굴동기나 과정도 한반도에서 구석기시대의 존재를 확증하는 일부 의식적인 측면이 없지 않으나 비교적 학술적 순수성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93년 10월 평양에서 단군릉이 발굴됐다고 발표한 이후 일련의 행적은 이전의 것과 확연히 구별되는 판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은 단군릉 발굴 결과를 발표하면서 단군이 5천11년전에 출생한 실재인물이며, 단군의 출생지, 건국지, 고조선의 수도가 모두 평양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북한은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93년 말부터 95년 말까지 평양과 그 주변에 대한 대대적인 발굴작업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 평양 강동군 남강노동자구의 고조선 초기의 성터 △ 강동군 송석리의 기원전 12세기의 쇠거울 △ 평남 성천군 용산리의 최초 순장무덤 △ 평남 덕천시 남양동의 집터 △ 평양 상원군 장리의 구석기 동굴유적 △ 평양 삼석구역 호남리의 고조선시기 부락터와 집자리 등을 발굴했다고 발표했다.

처음부터 단군과 고조선의 존재를 입증하고 평양을 그 중심무대로 설정하려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발굴작업을 했던만큼 그 결과도 의도된 방향에 맞춰 발표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발굴결과에 대한 공표는 93년부터 95년까지 평양에서 매년 열렸던 < 단군 및 고조선에 관한 학술발표회 >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 내용은 평양이 고대문화의 주요 무대였다는 것을 넘어 '인류 발상지의 하나이고 조선사람의 발상지, 고대문명의 시원지인 동시에 조선민족문화 발전의 중심지'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북한 역사학계에서 이번에 다시 평양을 중심으로 한 대동강 유역을 < 인류문명의 발상지 >라고 강조한 것은 본격적인 김정일총비서 시대를 맞아 평양을 < 역사의 도시 >에서 < 민족사의 성지 >로 끌어올려 북한정권의 민족사적 정통성 확보를 도모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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